김윤철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연극평론>

며칠 째 쾌청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스모그로 뿌옇던 도시가 마치 촬영이 잘 된 영화에서처럼 투명해 보인다.

마음껏 숨을 들여마셔본다.

시원하다.

행복하다.

그런데 나는 정말로 행복한가.

얼마전만 해도 당연히 누렸던 이 행복이 지금 이렇게 감격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생각이 이쯤에 이르자 나는 갑자기 불행해진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숨쉬는 생존환경이 오죽하길래 내가 이럴까
싶어서다.

지난 해 나는 미국의 세계적인 전위연극이론가이며 실천가인 마이클
커비라는 분과 1년 동안 연극원의 강의를 함께 맡은 적이 있다.

초빙교수로 1년간 계약을 맺고 온 이 분은 첫 학기를 마치자마자 미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사연을 알아본즉 대기오염이 너무 심하여 삶의 질을 추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좌석이 완전 매진되어 결국 그는
한 학기를 더 가르치고 뉴욕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귀국한지 두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나는 가슴이 아팠다.

그의 죽음은 물론 지병 때문이었겠지만 서울 체류 1년이 지병을 더욱
악화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나를 몹시 괴롭혔다.

만일 그 것이 부분적으로나마 사실이라면 나는, 그리고 우리 학교는
그 분 개인뿐만 아니라 세계 연극계에 막대한 폐해를 끼친 셈이다.

사실이 아니기를 애써 소망하며 그 분의 명복을 빈다.

우리의 생존이 이처럼 직접적으로 위협을 받고 있는데 나라가 온통 경제만
걱정한다.

나는 그 것이 걱정이다.

삶의 질을 소득수준으로만 재는 우둔함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분야에
팽배해 있다.

지금의 사정이 아무리 어렵다 해도 우리의 생활은 옛날보다 윤택해진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의식은 심히 추락해 있다.

아름다움 도덕 진실 정의와 같은 공동선의 가치들은 실종됐고 물질과
쾌락의 이기적 가치들이 날뛰는 세상이 돼버렸다.

아니 가치 문제를 따지는 것이 사치스럽다고 한다면 기본적인 생존자체가
위태로운 지경인데 과연 우리한테 경제가 환경보다 우선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전국의 대도시 전체에,특히 인구의 4분의1이 모여 살고 있는 서울에
오존주의보가 거의 일상적으로 내려지고 있는데도 아랑곳 없이 우리의
정치인들은 자나 깨나 권력 싸움이다.

권력을 잡기 위해 쾌락과 물질을 추구하는 동시대인들의 비위를 맞추는데
급급한 인상마저 준다.

시민들이 기꺼이 참여하겠다는 자동차운행 10부제나 5부제, 또는 2부제도
국민편의를 내세워 거부하고 혼잡통행료나 더 받을 궁리만 해댄다.

삼천리 금수강산이 쓰레기와 음식물 찌꺼기로 죽어가도 어느 지방자치단체
도 공권력을 합법적으로 사용하여 자연과 환경을 보호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더욱 분통 터지는 일은 국민들에게 쓰레기를 분리수거하게 해놓고서는 막상
그 것을 처리할 하부구조를 만들어 놓지 않아 분리수거된 쓰레기는 다시
본래의 쓰레기로 복원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를 어찌해야 할까.

경제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생존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경제기적을 이룩한 20세기 후반부 세대들이 21세기의 후손들에게
환경파괴의 악질범으로 지탄받지 않으려면 경제보다 환경을 우선시하는
의식개혁을 이뤄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