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 Company] 필립 콘디트 <보잉 회장>..항공업계 최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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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경영"
세계 최대의 항공기 메이커인 미국 보잉의 필립 콘디트(56) 회장은 자신의
경영 철학을 이렇게 요약한다.
끈끈한 인간관계에서 우러나는 환상의 팀워크, 직원 하나하나에게 일할
신명을 불러일으키는 활기찬 조직이 바로 콘디트 회장이 그리는 청사진이다.
80년 역사를 자랑하는 보잉의 일곱번째 사령탑인 그는 지난해 4월 CEO
(최고경영자)직에 오르자마자 보잉사의 권위적인 경영전통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놨다.
창사이래 처음으로 10억달러에 이르는 우리사주 프로그램을 발표하는가
하면 회사내에 탁아시설을 설치해 종업원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지프를 직접 몰고 생산현장에 나타나 근로자들과 허물없는 대화를 나누고
틈만나면 직원용 식당을 즐겨 찾는 그를 두고 직원들 사이엔 하나둘씩 "우리
회장님"이란 애칭이 퍼져나갔다.
노동조합조차 그를 "베스트"로 꼽는데 인색하지 않다.
콘디트 회장이 자타가 공인하는 "1백% 보잉맨"이란 점도 과거 어떤
전임자보다도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지난 65년 24세의 나이에 항공엔지니어로 보잉에 발을 들여놓은 콘디트
회장은 보잉의 야심작인 777기종을 직접 제작하면서 촉망받는 재목으로
떠올랐다.
이후 마케팅 세일즈 프로젝트기획 등 거의 모든 부서를 두루 거치며
보잉의 안팎사정을 훤히 통달했다.
콘디트 회장의 신속한 결정능력도 빼놓을 수 없는 강점이다.
지난 90년 US에어의 항공기 수주 경쟁을 벌일 때 그의 이같은 면모는
진가를 발휘했다.
US에어측이 갑작스레 비행기의 인테리어 변경을 요구하고 나선 것.
모두들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 때 당시 보잉의 기술팀장이었던 콘디트
회장은 즉시 OK를 내렸고 72시간안에 새로운 설계 도면을 내밀었다.
2백20억달러에 이르는 거래를 트는 순간이었다.
이 "사건"은 이후 보잉의 항공기 제작방향에 일대 획을 그었다.
고객의 의견을 대폭 반영하는 "맞춤 제작"의 길을 열게 된 것이다.
콘디트 회장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 보잉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미국내 항공수요가 다시 늘어나고 있는데다 아시아 시장이 말그대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더구나 록웰 인터내셔널과 맥도널 더글러스를 인수함으로써 당분간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항공업계의 최강자로 올라섰다.
지난해까지 받아놓은 주문은 4백28억달러어치에 달하는 5백59대.
세계 전체 수요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지난해 보잉의 매출액은 전년보다 16%가 불어난 2백27억달러를 기록했다.
올해매출액 목표는 32% 증가한 3백억달러로 잡고 있다.
한편에선 보잉의 승승장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항공산업의 주기로 볼 때 보잉의 무서운 상승세는 멀지않아 추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
하지만 콘디트 회장은 "항공산업의 주기를 다시 그릴 준비나 하라"며 큰
소리를 친다.
그동안 꾸준히 추진해온 기술혁신을 믿기 때문이다.
전 생산공정을 컴퓨터로 처리하고 있는 보잉은 내년초까지 생산능력을
2배로 증강시킬 계획.
게다가 항공 군수 우주산업을 포괄하는 사업다각화는 급격한 경기축소를
막아줄 든든한 뒷받침이 되리라는게 그의 신념이다.
이 야심찬 "보잉기"의 일곱번째 기장이 고도를 어디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지에 세계 항공업계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 김혜수 기자 >
[ 약력 ]
<>41년 8월 캘리포니아주 버클리 출생
<>63년 버클리대 기계 공학과 졸업
<>65년 프린스턴대 항공 엔지니어 석사
<>74년 MIT 경영학 석사
<>65년 보잉 항공역학엔지니어로 입사
<>78년 757기 개발팀장
<>83년 757부문 부사장
<>86년 상업용 항공기 부문 부사장
<>92년 보잉사 사장
<>96년 4월 회장겸 CEO취임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8일자).
세계 최대의 항공기 메이커인 미국 보잉의 필립 콘디트(56) 회장은 자신의
경영 철학을 이렇게 요약한다.
끈끈한 인간관계에서 우러나는 환상의 팀워크, 직원 하나하나에게 일할
신명을 불러일으키는 활기찬 조직이 바로 콘디트 회장이 그리는 청사진이다.
80년 역사를 자랑하는 보잉의 일곱번째 사령탑인 그는 지난해 4월 CEO
(최고경영자)직에 오르자마자 보잉사의 권위적인 경영전통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놨다.
창사이래 처음으로 10억달러에 이르는 우리사주 프로그램을 발표하는가
하면 회사내에 탁아시설을 설치해 종업원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지프를 직접 몰고 생산현장에 나타나 근로자들과 허물없는 대화를 나누고
틈만나면 직원용 식당을 즐겨 찾는 그를 두고 직원들 사이엔 하나둘씩 "우리
회장님"이란 애칭이 퍼져나갔다.
노동조합조차 그를 "베스트"로 꼽는데 인색하지 않다.
콘디트 회장이 자타가 공인하는 "1백% 보잉맨"이란 점도 과거 어떤
전임자보다도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지난 65년 24세의 나이에 항공엔지니어로 보잉에 발을 들여놓은 콘디트
회장은 보잉의 야심작인 777기종을 직접 제작하면서 촉망받는 재목으로
떠올랐다.
이후 마케팅 세일즈 프로젝트기획 등 거의 모든 부서를 두루 거치며
보잉의 안팎사정을 훤히 통달했다.
콘디트 회장의 신속한 결정능력도 빼놓을 수 없는 강점이다.
지난 90년 US에어의 항공기 수주 경쟁을 벌일 때 그의 이같은 면모는
진가를 발휘했다.
US에어측이 갑작스레 비행기의 인테리어 변경을 요구하고 나선 것.
모두들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 때 당시 보잉의 기술팀장이었던 콘디트
회장은 즉시 OK를 내렸고 72시간안에 새로운 설계 도면을 내밀었다.
2백20억달러에 이르는 거래를 트는 순간이었다.
이 "사건"은 이후 보잉의 항공기 제작방향에 일대 획을 그었다.
고객의 의견을 대폭 반영하는 "맞춤 제작"의 길을 열게 된 것이다.
콘디트 회장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 보잉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미국내 항공수요가 다시 늘어나고 있는데다 아시아 시장이 말그대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더구나 록웰 인터내셔널과 맥도널 더글러스를 인수함으로써 당분간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항공업계의 최강자로 올라섰다.
지난해까지 받아놓은 주문은 4백28억달러어치에 달하는 5백59대.
세계 전체 수요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지난해 보잉의 매출액은 전년보다 16%가 불어난 2백27억달러를 기록했다.
올해매출액 목표는 32% 증가한 3백억달러로 잡고 있다.
한편에선 보잉의 승승장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항공산업의 주기로 볼 때 보잉의 무서운 상승세는 멀지않아 추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
하지만 콘디트 회장은 "항공산업의 주기를 다시 그릴 준비나 하라"며 큰
소리를 친다.
그동안 꾸준히 추진해온 기술혁신을 믿기 때문이다.
전 생산공정을 컴퓨터로 처리하고 있는 보잉은 내년초까지 생산능력을
2배로 증강시킬 계획.
게다가 항공 군수 우주산업을 포괄하는 사업다각화는 급격한 경기축소를
막아줄 든든한 뒷받침이 되리라는게 그의 신념이다.
이 야심찬 "보잉기"의 일곱번째 기장이 고도를 어디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지에 세계 항공업계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 김혜수 기자 >
[ 약력 ]
<>41년 8월 캘리포니아주 버클리 출생
<>63년 버클리대 기계 공학과 졸업
<>65년 프린스턴대 항공 엔지니어 석사
<>74년 MIT 경영학 석사
<>65년 보잉 항공역학엔지니어로 입사
<>78년 757기 개발팀장
<>83년 757부문 부사장
<>86년 상업용 항공기 부문 부사장
<>92년 보잉사 사장
<>96년 4월 회장겸 CEO취임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