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비와 입시지옥이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자녀들의 교육문제로 이민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예전에는 자녀들만 조기유학을 보냈지만 요즘은 아예 이민을 가버린다.

이른바 교육이민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17일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94년3월~97년2월 동안 고교 재학이하
학력소지자로서 교육감으로부터 유학 인정을 받지 않고 불법유학을 떠난
학생 수는 모두 6천9백78명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같은 기간동안 해외이민 및 이주 등에 의한 조기유학생은
1만2천7백87명으로 거의 두배에 가깝다.

대기업체 부장인 K모씨는 고2 아들과 중3 딸의 과외비 때문에 이민을
결정했다.

고2 아들의 경우 과외비로 매달 1백50만원이 나간다.

딸도 90만원 이상 나갔다.

그러나 K씨의 연봉은 상여금을 포함, 4천7백만원 정도.

교육비를 빼면 생활비가 턱없이 모자란다.

품위유지를 위한 각종 경조사비 대기도 벅차다.

"아파트 평수를 줄여 이사까지 하며 과외비를 마련했지만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애들만 유학보내자니 왠지 불안하고 해서 아예 이민을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최근 현대경제사회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학부모 10명중 3명이
지나친 과외비 부담을 피해 이민이나 조기유학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월 정부가 고교졸업 미만자에 대한 학비송금을 전면 금지하면서
아예 이민을 가려는 경향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또 학비와 생활비 등 조기유학에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은 것도 이민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미국 등으로 이민 가서 영주권을 따면 학비가 매우 싸지기 때문이다.

이민알선업체 고려이주개발공사 교육담당 강현영씨는 "학비송금 금지조치,
유학비 소득공제 제한 등 정부의 불법유학 억제 정책의 영향을 받고
있는데다 과다한 조기유학 비용을 줄이기 위해 돈이 덜 드는 교육목적
이민이 늘어나는 추세다"고 말했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듯 서울 강남의 한 고등학교 상담실에는 아예
이민전문 유학상담카운슬러까지 등장했다.

서울 강남의 K고 1학년 담임인 박모씨는 "올 상반기에 우리반에서만
3명이 이민을 갔다.

부모들은 사업을 하는 사람들로 자주 외국에 나가면서 국내 교육체제에
환멸을 느낀 것 같았다"고 밝혔다.

< 한은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