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포동 서면 등과 함께 부산에서 젊은이들의 거리로 꼽히는 부산대학교 앞.

해가 떨어질 무렵 어디서 쏟아져 나왔는지 거리는 금세 젊은이들로
가득찬다.

그래도 거리 전체의 차분함에 눌려 "길보드" 음악은 제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부산하면 전세계를 오가는 배들에 묻어온 여러 문화가 뒤섞여 현란함을
자랑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부산대앞은 비교적 조용한 분유기를 유지하고 있는 곳이지만 그것이
선입관에 불과함을 말해준다.

이른바 "화끈하게 노는 애들"이 해운대나 광안리로 잠시 떠난 탓일까.

이 거리의 주인은 10대후반에서 20대중반.

이들은 그러나 "튀지 않으면 존재가치가 없다"는 말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것같다.

오가는 이들은 거의 청바지나 긴 반바지에 티셔츠차림.

탱크톱이나 배꼽티, 핫팬츠는 눈씻고 찾아야 겨우 한둘이다.

머리를 형형색색으로 물들인 "파격파"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이곳이 패션과 동떨어져있기 때문은 절대 아니다.

부산대학교앞 지하철역을 내려서면 제일 먼저 부딪치는 곳이 옷가게
골목이다.

부산대 교문에 이르는 지름길인 이 길 양쪽에서 브랜드란 브랜드는 다
찾을 수 있다.

그래도 이상하리만큼 거리에는 눈길을 끄는 차림새를 한 이가 드물다.

아마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대부분 학생인데다 친구와 한두잔 가볍게
걸치러 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에서는 단연 부산대 정문과 맥도날드 앞이 접선장소로 꼽힌다.

이 두곳은 낮에도 늘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빈다.

자투리 시간을 보낼 곳을 찾는 이들을 시간제 만화방이 여기저기서 반긴다.

다른 곳에선 만화방이 하나둘씩 문을 닫는다는데 이 동네 만화방엔
사람들이 언제나 북적거린다.

반면 부산대앞엔 영화관이 한곳도 없다.

부산시내 이름난 극장이 전부 남포동에 몰려있다지만 그래도 이상한
일이다.

정시당안경 대명당 안경나라 등 큰 안경점들이 여남은개나 되는 것도 다른
유흥가에선 보기 드문 모습이다.

아트타운과 팬시라이프 영문구플라자 등 팬시점들은 이곳이 다른 유흥가
보다 더 젊은 사람들의 거리임을 말해준다.

대형서점들 탓에 서점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는 서울의 대학가와는 달리
이곳에는 청하서점과 백두문고 등 소규모 서점도 상당히 많다.

늦도록 문을 여는 이 서점들엔 책읽기와는 담쌓았다는 비난을 받는 젊은이
들이 늘 가득차 있다.

네온사인들이 서로 뽐내는 밤인데도 거리는 비교적 조용하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젊은 사람도 없다.

속칭 삐끼도 딱 하나 있는 디스코텍에서 나온 몇몇 뿐이다.

그러고보니 흥청망청 먹고 마시고 흔들어대는 곳은 당분간 개점휴업
상태이다.

오는 9월 부산대가 개학해야 이 거리도 시끌벅적함을 되찾지 않을까.

주말 오후엔 라이브 뮤직 공연을 하는 카페 "이창"의 한 종업원은 "늘
북적대는 남포동이나 광안리와 달리 이곳은 방학때면 조용한 편"이라고
말한다.

< 부산= 김용준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