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씨(남.31)와 허모씨(여.28)는 지난 91년 11월 중매로 만나 10일만에
약혼했다.

허씨는 약혼식 며칠후 김씨가 자신의 직업.학력 등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김씨는 자신이 서울특별시 일반행정직 7급이라고 말했으나 사실은
서울특별시 산하 모기관 소속 기능직 8등급 공무원이었다.

또 지방명문인 J고등학교가 아니라 J고등학교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를
졸업한 사실도 알게 됐다.

허씨는 즉각 김씨에게 약혼은 무효라고 통보했다.

이 소식을 접한 김씨는 "나는 거짓말을 한 적 없다.

중매쟁이가 나에 대해 다소 과장되게 설명한 것 뿐"이라고 반발했다.

김씨는 정규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고 사무직 공무원이 아니라 기능직
공무원이라는 사실만으로 일방적으로 파혼당하는 것은 억울하다며 허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및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피소된 허씨도 김씨의 거짓말 때문에 약혼-파혼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돼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며 위자료 청구소송으로 맞섰다.

과연 법원에서는 누구의 요구를 들어주었을까?

결과는 허씨의 KO승.

4년간의 송사끝에 대법원은 95년 김씨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고 허씨의
청구를 받아들여 "김씨는 허씨에게 위자료 3천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수차에 걸친 공판을 통해 일단 거짓말을 한 사람은 중매쟁이가
아니라 김씨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김씨와 허씨처럼 교제기간이 짧은 커플에게는 학력이나
직업이 상대방을 평가하는데 매우 중대한 자료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약혼 당사자는 자신의 학력 경력 직업 등 혼인의사를 결정하는데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에 관해 상대방에게 사실대로 알려줄 신의성실의
원칙상의 의무가 있다"며 "김씨의 거짓말로 인해 더이상 김씨를 신뢰하지
못하게 된 허씨가 약혼을 취소한 것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허씨의 과실로 인정된 부분도 있었다.

허씨가 충분한 시간을 갖고 김씨에 대해 정확히 알아보지 않은채 만난지
단 10일만에 경솔히 약혼한 잘못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과실은 김씨의 거짓말보다는 경미한 것이어서 위자료를
산정할때 참작할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김인식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