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표적 도박이라고 할수 있는 투전이 한반도에 전래된 것은
조선조 숙종때였다.

중국에 자주 드나들었던 장현이라는 사람이 들여와 시작한 것이었다.

이 투전은 영조 초기부터 널리 퍼져서 서울은 물론 산간벽지에서도 크게
유행했다.

나라에서는 당시 투전이 도둑질보다 더 큰 해를 끼친다고 하여 법으로
엄금했으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초상집에서는 공공연히 도박판이 벌어지는 일이 성행했는데도 관에서는
이를 단속하지 않았다.

이를 기화로 많은 투전꾼들이 생판 모르는 남의 상가에 문상객을
가장하여 들어가 도박을 즐겼다.

조선조 말기에는 아문의 청방에서 관원들이 드러내놓고 도박을 했다.

특히 왕의 행차가 있는 전날 밤에는 종로 복판에서 밤새도록 도박판이
벌어졌고 판이 클수록 왕의 거동에 축하의 뜻이 더해진다고 여겨 공금을
도박꾼들에게 꾸어주었다.

또 도박꾼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분전노가 빚을 돌려받지 못하게
될 때에는 수령에게 고소를 했다.

도박을 오히려 장려한 사례들이었다.

현금이 없는 농촌사람들은 도박판의 중간착취꾼인 설주에게 가축이나
농작물등을 싯가의 반값으로 잡히고 설주의 도장이 찍힌 사전을 발행받아
도박을 했다.

도박이 끝나면 설주는 그 사전을 현금으로 바꾸어주고 가축이나 농작물을
거둬들였다.

이러한 투전 전통이 지금과 같은 온갖 도박의 전성시대를 가져온 연원이
된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도박은 원래 오락적인 동기에서 생겨난 것이었지만 시대를 내려오면서
노력하지 않고도 거금을 거머쥐는 사행심리를 부추기는 것으로 이행되었다.

그러한 심리는 사회적으로 커다란 해악이 될 수 밖에 없다.

요즘 한국사회에서는 그 병리현상이 막다른 골목에 와 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수 없게 만든다.

요즘 수백억대 판돈의 국내 도박단이 적발되었는가 하면 수억을 해외
도박판에서 날려버린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그동안 권력의 핵심이나 주변에 있던 자들이 일확천금을 해온 세태를
반영해주는 현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