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당찾기에 집착하는 ''잡술풍수''가 판치는 요즘 땅과 사람의 조화에 역점을
둔 전통 자생풍수를 다시 정립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풍수지리연구가
최창조(49.전 서울대교수)씨.

그는 서구학문 일색이던 국내 지리학계에서 풍수를 지리학의 한 분야로
인정받게한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지난 92년 3월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직은 그만둔 뒤 국내 자생풍수 흔적을
찾아 제주도와 서남해안 도서지방 등을 두루 찾아다니고 있는 그가 지금까지
의 연구결과를 집대성한 ''한국의 자생풍수 I/II''를 최근 내놓았다.

그는 서울대 지리학과와 대학원을 마친뒤 국토개발연구원 청주사대(현
서원대) 전북대를 거쳐 지난 88년8월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로 부임한지 약
3년반만에 사직, 자연인으로 돌아갔다.

이후 그는 풍수지리연구가라는 직함을 갖고 전국을 돌며 자생풍수 활성화
라는 고된 길을 홀로 개척해 가고 있다.

=======================================================================

[ 만난 사람 = 유대형 < 사회2부 기자 > ]

-풍수와 인연을 맺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언제부터 관심을 가지셨습니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할때 망우리 공동묘지에 자주 갔었습니다.

집이 그곳에서 멀지않은데다 거기에 가면 시름을 잊고 마음이 평온해지곤
했거든요.

그곳에서 우연히 풍수를 하는 한 분을 만났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묘자리를 보는 지관은 아니었고 그저 풍수지리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던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망우리는 조선왕조의 왕릉이 많은 동구릉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는데 일제가
조선왕조의 맥을 끊기 위해 공동묘지를 조성한 곳입니다.

그분은 아마도 그것과의 연관성을 찾기 위해 그곳에 온 것 같아요.

그분을 통해 풍수의 맛을 처음 본 셈이지요.

첫 만남이후 한달간은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했습니다"

-풍수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풍수는 "명당찾기"라는 왜곡된 시각도 많이 있는게 사실인데요.

"풍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에요.

땅은 하나의 무대일뿐 배역을 맡은 인간이 주인공이지요.

하늘 땅 사람의 기가 서로 조화를 이루는 방안을 찾는 것이 풍수지리의
핵심입니다.

좋은 땅 나쁜 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쓰임새에 맞는 땅을 찾는 것이
중요하지요.

착한 사람에겐 세상의 모든 땅이 명당입니다.

천리를 따르는데 지리(땅의 이치)가 안좇아 오겠습니까.

사람을 모르고서 좋은 땅을 찾는 것은 술법입니다"

-풍수를 하나의 학문으로 정립시키기 위해 애를 많이 쓰셨는데 아직까지
제대로 자리를 못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풍수가 과학적인 근거를 갖고 있다고 보십니까.

"서양식 과학의 시각에서 본다면 그렇지 않습니다.

단순히 땅의 거죽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지요.

땅의 기운과 사람은 객관화될수 없는 존재여서 하나의 학문으로 정립되기는
힘들다고 봅니다.

그러나 땅을 제대로 알려면 지리만으로는 안됩니다.

땅의 기운과 그것이 인간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는 풍수를 함께 알아야
합니다"

-풍수지리가들은 땅의 기운을 느끼는 신기가 있다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모든 사람이 땅의 기를 느낄수 있어요.

봄철에 새싹이 움틀때 우리 모두 땅의 신비한 기운을 느끼지 않습니까.

땅에는 분명 설명할수 없는 기운이 있어요.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는 영왕과 이방자 여사를 모신 영릉이 있는데
이곳은 사악한 기운이 떠도는 자리입니다.

봉분에 뱀구멍이 여러개 나있는 이곳에 가면 땅멀미를 느껴요.

정상적인 사람과는 맞지 않는 땅이지요.

도시혈이라고 땅속에서 끊임없이 토양이 흘러내리는 곳입니다.

무덤을 쓰거나 집을 지어서는 안되는 곳이지요.

하지만 이런 땅도 파충류를 키우거나 기수련원 같은 용도로는 쓸수 있지요"

-지리학 교수로 오래 재직하셨는데 지리학과 풍수의 관련성은 어떻습니까.

"79년부터 92년초까지 재직했으니까 만 13년된 셈이지요.

지리학은 땅의 외면을 다루는 학문입니다.

인구 지형 촌락 산업과 같은 물질적인 측면을 다루는 것이지요.

이것은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사기 지리지 등 관찬지리지에 잘 나타나 있고
서양에서도 이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중국에는 지리학 외에도 땅의 기운을 인정하고 인간과의
관련성을 연구하는 풍수가 따로 있었습니다.

땅을 제대로 알려면 이 두가지 모두가 필요하지요"

-풍수를 보는 관점도 시대마다 다를텐데요.

옛날 전통풍수와 오늘날의 풍수는 어떻게 다른가요.

"신라말 승려 도선에서부터 조선말 동학까지 이어 내려온 전통 자생풍수의
핵심은 땅에 대한 사랑입니다.

땅을 인간의 어머니로 보고 병들고 아픈 곳을 찾아 어루만지는 것이었지요.

좋은 땅을 찾아다니기 보다는 나쁜 땅을 찾아 고치고 보완하는데 역점을
두었지요.

하지만 우리 혼을 말살하려는 일제에 의해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중시한
전통풍수는 퇴색되고 말았습니다.

대신 집터나 묘자리의 명당을 잡아 현세의 복을 비는 술법풍수가 활개를
치고 있지요.

이른바 풍수적 말세라고 할수 있습니다"

-묘자리나 집터를 잡아 준 적이 있습니까.

유혹도 많았을텐데요.

"대학에 재직할때 풍수를 인정치 않고 저와 "풍수논쟁"을 벌였던 사람들도
상을 당했을때 저에게 묘자리를 봐달라고 청하더군요(웃음).

친한 친구들을 비롯해 몇번 같이 가서 봐준 적은 있습니다.

가장 좋은 묘자리는 자식들이 압니다.

누구라도 부모를 위해 마련해 놓은 땅에 가서 한시간만 조용히 앉아 있으면
땅의 기운을 느낄수 있습니다"

-그래도 명당을 바라고 찾는 것은 어쩔수 없는 현실이잖습니까.

"명당은 없습니다.

땅도 사람을 대하듯 하면 됩니다.

사람도 온순한 사람 괴팍한 사람등 다양한 사람이 있듯이 땅도 마찬가지
입니다.

명당을 찾는 것은 여러명의 자식중에 하나만을 구하려는 것과 같아요.

인륜에 어긋나는 것이지요.

땅을 이용과 소유의 대상으로만 보아서는 안됩니다.

욕심부리지 말고 가장 평범하고 무난한 것을 따라야지요"

-교수직을 그만 두신후 어떻게 지내셨나요.

또 앞으로의 계획은.

"우리나라의 전통 자생풍수 흔적이 아직 남아 있는 서남해안 도서지방을
주로 찾아 다녔습니다.

증언을 해주실 분도 만나고 증거를 모으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죠.

지난 6월 그동안 모은 자료를 중심으로 "한국의 자생풍수 I/II"를
펴냈습니다.

앞으로도 모든 사람이 조화롭게 잘 사는 세상을 꿈꾸던 전통풍수의 개벽
사상을 되살리는데 힘쓰려고 합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