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그룹이 24일 대규모 임원감축과 함께 조직개편을 단행한 것은 1차적
으로 채권은행단의 조직슬림화요구를 수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내용에서는 단순한 인원감축의 차원을 넘어 기아그룹이 처한
위기국면을 어떤 식으로 돌파하려 하는는지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 많아
주목된다.

기아는 우선 이번 인원감축으로 김선홍회장의 친정체제를 구축했다.

김회장과 다소 껄끄러운 관계로 알려졌던 한승준부회장이 뜻밖에 자진사퇴
형식으로 물러난 것은 바로 그런 흐름을 읽게 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김회장은 23일 오후 늦게 까지 경영혁신기획단이 중심이 돼 작성해
올라온 인사내용을 꼼꼼히 챙기며 최종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함께 박제혁 자동차사장, 유영걸 자동차판매 사장, 송병남 그룹경영
혁신기획단 사장등 핵심 사장 3명을 유임시킨 것은 김회장이 이들 경영진들
과 힘을 합쳐 현재의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김영삼 대통령의 손아래 동서이기도 한 도재영 기아자동차판매 부회장 역시
자진 사퇴키로 한것도 주목되는 점이다.

이는 도부회장이 물러나지 않고는 15명에 이르는 고문진의 퇴임을 위한
명분쌓기가 어렵다는 기아측의 입장을 도부회장이 선뜻 받아들인 결과로
알려지고 있다.

어쨌던 기아가 "읍참마속"의 아픔을 감수하고 이같은 인사를 단행한 것은
물론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통해 반드시 자력회생하겠다는 의지의 표현
으로 해석되기에 충분하다.

특히 이번 인사의 후속조치로 그룹내 주력사인 기아자동차의 대대적인
조직 슬림화를 단행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그러나 기아의 이번 인사가 정부나 채권단에 얼마나 호소력을 가질지는
미지수다.

이들로부터 퇴진 압력을 가장 크게 받고 있는 김회장이 자신은 제외한채
나머지 경영진에 대한 인사를 직접 관장한 것을 채권단이 어떻게 받아
들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부와 채권은행단은 초근 기아인수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삼성그룹의 내부보고서유출 파문에도 불구, 김선홍회장의 퇴진 요구를
철회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기아가 내부적으로는 엄청난 진통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우리 재계 초유의
임원감축을 단행하고도 여전히 정부나 채권단의 눈치를 살필수 밖에 없는
원인도 바로 여기에 있는 셈이다.

<윤성민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