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 유성구 궁동의 유흥가.

이곳 사람들은 이 거리를 "압구궁동"이라 부른다.

그 화려함이 이른바 오렌지족들의 고향이었던 서울의 압구정동에
비길만하다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그러나 주택가를 계속 먹어들어가며 끝없이 커질 것같던 이곳 거리도
오렌지족이 떠난 압구정동처럼 조금씩 빛이 바래가고 있다.

한때 밤이면 사람도 지나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골목을 가득 메우던
승용차 무리를 요즘에는 주말에도 좀처럼 보기 힘들다.

"한두대 건너 한대꼴"로 많았다는 서울번호판을 단 승용차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밤 12시가 넘어야 이 거리의 진가가 드러난다는 것은 벌써 옛말인 듯.

"장사가 너무나 잘 된다고 해 권리금을 듬뿍 주고 들어왔는데 이 동네도
불경기 타나봐요" 한 주점 주인의 넋두리이다.

그의 말처럼 신세대들에게 이곳 궁동은 불과 몇달전만해도 해방구나
다름없었다.

지난 94년 관광특구로 지정되면서 술집 비디오방 노래방 등이 밤새도록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밤 12시면 아쉬움을 삼켜야했던 젊은이들에게 밤을 지새울 수 있다는
것만큼 매력적인 일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대전시내에서 놀다가도 밤이 깊으면 이곳을 찾았다.

줄지어 골목으로 젊은이들을 실어나르는 택시들과 주차할 자리를 찾는
승용차로 이 거리는 평일 밤에도 장사진을 이뤘다.

신세대들에게 이곳은 술값이 그리 비싸지 않은 탓에 가벼운 주머니로도
만족할만한 취기를 얻을 수 있는 곳이었다.

알코올기운없이 밤을 보내고 싶은 여자애들에겐 다트게임장과 전자오락실이
있었다.

마땅히 갈곳이 없는 이들은 비디오방에서 밤을 보냈다.

당구장은 숱하게 많았지만 차례가 오려면 한참 기다려야 했다.

밤을 새울 수 있다는 데다 술값이 싸다는 점까지 더하면 서울에서부터의
원정도 전혀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서울에서 이곳까지는 승용차로 2시간거리.서울 번호판을 단 이들은
강남에서 이곳까지 1시간반에 주파했다는 자랑을 늘어놓곤 했다.

그러나 몇달전 서울의 이태원이 관광특구로 지정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충청남도내 온양지구도 24시간 영업을 할 수 있게 됐다.

12시까지로 제한됐던 대전시내 유흥업소들의 영업시간이 새벽 2시까지로
늘어난 것은 이 거리의 매력을 앗아간 결정타였다.

이 거리의 주인임을 포기하는 이들이 날마다 늘어났다.

이곳을 떠난 이들은 대부분 대전역에서부터 충남도청까지의 은행동에서
터를 잡았다고 한다 "동네가 조용해져서 살 것 같아요"

"이곳을 관광특구에서 제외시켜 달라고 얼마나 민원을 냈는지 모릅니다"

아쉬워하는 상인들과 달리 한 골목 건너 주택가의 토박이들은 사뭇
반가운 표정들이다.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던 이곳 주민들은 충남대에 모여 시위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토박이들은 이곳이 시골 읍 수준이었던 80년대말까지 있었던 유성만화방을
기억한다.

유성당구장과 카페 온두막등도.

충남대와 당시 한국과학기술대(KIT) 학생들의 휴식처였던 이곳은 지금은
모두 4층이 넘는 현대식 건물속으로 스며들어 버리고 말았다.

뭇사람들의 추억을 먹고 화려하게 피었던 궁동이 다시 지는 것일까.

<김용준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