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직전 선보였던 "비틀" (Beetle)은 60년대 전세계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베스트셀러 카의 대명사.

이차를 만든 독일 폴크스바겐사는 그러나 최근 신형모델로 개발한
"뉴비틀"의 본격적인 시판을 앞두고 "나치망령"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비틀생산에 강제동원됐던 쓰라린 경험이 수많은 유럽인들의 가슴속에
생생히 남아 있는 지금 "어떻게 비틀이란 차를 복원시킬 수 있느냐"는
비난이 유럽 각국으로부터 쇄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폴크스바겐사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목적으로 비틀이란 브랜드를 다시
사용했지만 나치망령이라는 "암초"에 부딪힐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셈이다.

폴크스바겐의 이런 어려움은 독일학자인 한스 몸젠교수가 "폴크스바겐공장
과 제3제국의 노동자들"이란 책을 지난해 발간하면서 비롯됐다.

이책은 "히틀러는 1938년 비틀을 국민차로 생산하기 위해 아우슈비츠
등 집단수용소에 있던 7천명의 유태인 소련인 폴란드인들을 노동자로
강제 동원했다.

이들은 아침6시30분부터 오후6시까지 하루 감자 몇개와 1백50g의 빵만을
먹으며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임산부가 애를 낳으면 신생아는 버려지고 산모는 곧바로 생산라인에
투입됐다"는 등 당시 외국 노동자들이 겪었던 고통을 상세히 전달했다.

그 결과 유럽 각국으로부터의 비난이 거세자 폴크스바겐은 "뉴비틀"의
주타깃을 북미시장으로 선회했다.

유럽내 판매는 운명에 맡기는 대신 나치망령이 거의 없다시피한
최대시장인 미국에서 돌파구를 찾자는 의도임은 물론이다.

문제는 뉴비틀의 미국진출에도 골치아픈 걸림돌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몸젠교수가 펴낸 책이 뉴 비틀의 미국진출 시점 이전까지 영어로 번역돼
미국에서 출판될 경우다.

나치와 폴크스바겐사의 잔학상이 책을 통해 미국인들에 알려질 경우
미국에서도 비난이 쏟아져 판매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게 뻔하다.

폴크스바겐사는 내년 3월 뉴비틀의 미국진출 이전까지는 이 책이 출판되지
않기를 기원하는 입장이다.

<런던=이성구 특파원>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