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둘, 셋! 스물!"

"머리~! 손목! 야~압!"

바람 한점 없는 무더운 강당에 무거운 정적과 날카로운 기합이 밀고
밀리듯 되풀이 된다.

날렵한 발놀림과 잔잔한 시선, 그리고 허공을 가르는 죽도에서 검의
차갑고도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아랫배로부터 울려 나오는 기합소리와 고막을 때리는 타격음에 일상의
권태와 시름마저 단칼에 베어진다.

가만히 서있어도 땀이 흐르는 더위에 두꺼운 도복에 갑옷, 얼굴에는
호면까지 쓰고 수련을 하다보면 그야말로 땀이 비오듯 한다.

매트리스가 깔린 구로병원 강당에서 수련에 여념이 없는 "고대병원
검도회"는 95년 10월에 결성되어 해가 갈수록 그 규모와 실력이 배가되고
있다.

다양한 직종이 모여 일하고 있는 병원이라는 특수성 때문인지, 아니면
몸을 부딪치고 기를 주고받는 "검도"의 특성 때문인지 "검도회"는 어느
모임보다 그 친화력과 유대가 돈독하다.

머리가 흰 기사장으로부터 나이 어린 간호조무사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30여 회원이 각자 하는 일이 다르고 전문분야 역시 다르지만 "검을 통한
도" "생활속의 수양"을 추구한다.

이원대 (임상병리과 기사장) 김정웅 (진단방사선과 기사장) 이익세
(원무과) 송영찬.김원식.노병윤 (시설과) 송순덕.강대현 (방사선과)
전영미 (전 정신과 간호사)씨 등이 특히 열성적이다.

열심히들 운동을 한 덕에 올해 6월에는 6명의 회원이 입단심사에
참가하여 동호회로서는 드물게 전원이 합격하는 쾌거를 이뤘다.

대개의 스포츠나 운동이 기를 연마함을 목적으로 한다면 "검도"는 각
개인의 심신수양을 목적으로 하는 예를 중시하는 운동이다.

물질문명의 폐해가 극에 달하면 달할수록 고결한 "정신수양과 예"의
가치는 날로 높아지는 듯 하다.

한 평생을 걸어온 검도수련의 과정에 이제서야 "기"와 "술"이 아닌
"기"와 "도"의 지경을 조금씩 알 듯하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