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18일 오전 7시40분.

부산시 동래구 사직1동에 사는 배연규씨(49)가 집 다락문틀에 넥타이로
목을 매 숨졌다.

지난해 9월 직장에서 인원감축으로 강제퇴직당한 뒤 그동안 생활비를 전혀
벌어오지 못한게 자살이유였다.

또 지난 6월25일 오후 10시30분에는 서울 관악구 봉천6동에 사는 최일응
(30)씨가 집근처 어린이 놀이터 그네에 빨래줄로 목을 매 자살했다.

최씨는 지난해 7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뒤 1년동안 취직시험을 수십차례
봤지만 번번이 낙방하면서 생활고에 시달린게 원인이었다.

불황여파로 고용불안이 심화되면서 배씨와 최씨처럼 "인간사표"를 내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심각한 의욕상실과 자괴감, 생활고 등이 그들에게 최악의 선책을 강요한
것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94년 총 자살건수는 7천4백51명, 95년에는
7천7백9명, 96년은 8천6백32명으로 꾸준히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일반봉급자(공무원 제외)들의 자살건수만 보면 20대는 94년 1백22명에서
95년 1백66명, 96년 1백98명으로 늘었다.

30대는 94년 1백90명, 95년 2백22명, 96년 2백57명으로 증가했다.

특히 명퇴자가 몰려있는 40대의 경우 94년 1백8명에서 95년 1백84명, 96년
1백99명으로 2년사이에 무려 84%나 증가했다.

경찰청은 올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봉급생활자들이 작년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실업률이 0.1% 높아지면 남성 자살자가 3백51명 늘어난다는
통계가 있다.

일본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실업률이 2.1%였던 지난 90년 자살자 수는
1만2천3백16명이었으나 2.9%인 94년에는 1만4천58명으로 늘어난 것.

이중 경제문제로 자살한 사건이 2천5백13명이었고 부서이동과 승진누락 등
직장근무 문제로 죽은 사람은 1천1백38명이었다.

중앙대병원 정신과 조주연 전문의는 "30~40대에 실직할 경우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지는 듯한 공허감에 시달리면서 자신의
가치 자체를 부인하고 삶을 포기하기까지 이른다"고 설명했다.

많은 직장인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해고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어린시절 학교에서 앞의 아이가 매맞을 때 뒤에 선 아이가 심하게
공포를 느끼는 것과 흡사하다.

이런 강박관념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자살 충동까지 느끼게 되는 것이다.

요즘은 부도를 비관한 중소기업인들의 자살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18일 건축업체인 성일기업을 운영하던 이장징씨(56.충북 청주시
가경동)는 회사가 부도나자 옥상에서 투신해 목숨을 끊었다.

지난 3월에는 의류제조업 사장 오인문씨(40.서울 성동구 하왕십리동)가
사업부진으로 빚을 갚지 못하자 한강으로 뛰어내려 자살했다.

극심한 불황은 이제 우리 사회를 "술 권하는 사회"에서 "직장사표, 인간
사표를 권하는 사회"로 몰아가고 있다.

< 한은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