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의 움직임이 일단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으나 그 속을 들여다 보면
금융기관들의 외화자금 사정은 한마디로 아슬아슬하다.

하루하루를 간신히 넘기고 있는 국면이다.

종금사등 제2금융권 기관은 말할 것도 없고 국책은행까지도 돈을 빌리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신규차입은 완전히 중단됐고 이미 빌려온 자금까지 상환을 독촉받고 있다.

쉬운 말로 외화는 "부도위기"라는게 금융기관들의 실토다.

사실상 종금사와 은행은 더이상 외화조달 창구로써의 기능을 잃은 상태나
다름없다.

정부가 뒤늦게 몇가지 지원책을 발표했으나 들어올 외화의 규모가 뻔해
오히려 가수요만 자극하고 있다.

<> 한숨짓는 금융기관 =외화자금난을 가장 심하게 겪는 곳은 종금사들.

외화자산 수익경쟁을 과도하게 벌이면서 안정성보다는 수익성에 투자우선
순위를 둔 탓이다.

단기차입금을 리스자산이나 태국등 수익율이 높은 지역에 투자, 유동성이
크게 떨어져 있다.

한국정부가 금융기관의 대외채무를 보증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워낙 시장의
상황이 불안해 외국기관들은 여전히 안심을 못하는 눈치다.

이미 끊겨 있는 라인이 회복되지 않고 있다.

자체 차입은 물론 지난달 은행보증 형식을 빌어 USCP(미국시장에서 발행
되는 기업어음)를 발행, 자금을 조달하려던 종금사들의 계획도 무기 연기된
채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시중은행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CP로 외화자금을 차입하던 것은 벌써 옛날일.

"오버 나이트(하루짜리 콜)"는 가능하다는 정도가 종금사들과의 차이다.

은행별로 오버 나이트에 의존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규모는 5억달러 가량.

이자가 비싸 경영압박요인이 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금리불문"은 이제 외화차입의 관행이 돼있다.

제일 서울은행등 부실여신이 많은 곳은 가산금리가 1백BP(1%포인트)나
된다.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은 봉이 돼 버렸다는 자조섞인 탄식도 나온다.

외화자금시장에서 아직 크레팃 라인(대출한도)을 보유하고 있는 산업은행
이나 기업은행으로부터 빌려 쓰는 수가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코스트가 높다.

0.3-0.35%의 가산금리를 붙여 들여온 자금에 시중은행들은 다시 0.25-
0.35%를, 종금사들은 0.35-0.4%를 추가로 주어야 한다.

특히 산업.기업은행등은 종금사에 대해 1-3개월 짜리 기간물로 외화를
대출해 주던 것을 이제는 1주일, 짧으면 하루짜리로 여신을 단기화하고
규모도 줄였다.

이 때문에 종금사들은 한계상황으로까지 내몰리고 있다.

<>외환당국의 실기=그동안 지원을 미루던 당국이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상황을 반전시키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그래서 "언발에 오줌 누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최근 외환보유고를 통해 외화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국책은행을 통해 자금을 들여와 방출하고 증권사장에 대한 외국인투자
한도도 조만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장 종금사들에 필요한 자금만도 10억달러 정도.

지난 18일 시중은행을 통해 풀은 5억달러를 제외하면 당분간은 더 들어올
자금이 없는게 현실이다.

게다가 이미 지원받은 5억달러는 지원기간이 1주일로 돼있고 이 기간중
외화확보에 최선을 다해 달라는 조건까지 붙어 있다.

일부에서는 외화자산을 매각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그렇지만 국내 기관들의 해외법인이나 지점들은 외화자산의 40-50%를
한국물에 투자한 상태여서 외화자산 매각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게
현실이다.

<>외화사정 전망=정부의 지원으로 약 80억달러가 더 들어올 것으로 보이는
만큼 장기적으론 대혼란은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분간이 분제다.

9월에는 무차별적인 융단폭격이 있을 것이란 우려가 팽배해 있다.

일본계 은행들이 반기결산에 대비,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 비율을
맞추려고 대출외화를 회수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현재 오버 나이트로 근근이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시중은행도 큰
충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종금사들이 차입한 외화자금의 상당액이 9월 만기란 점도 위기감을 증폭
시키고 있다.

<박기호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