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S그룹에 다니는 30세의 김대리.

그는 요즈음 적지 않은 걱정거리가 생겼다.

불황의 그림자가 엉뚱한 곳에서 다가온 때문이다.

결혼 적령기인 그는 심심찮게 맞선을 보러 나간다.

그러나 어느날부터인지 그의 "괜찮은" 직업이 걸림돌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얼마전만해도 자랑스럽게 말하던 대기업사원이라는 직업을 이제는
조심스럽게 소개한다.

경기침체로 기업들이 잇달아 도산하자 회사원의 인기가 급락해서다.

기업의 연쇄부도가 맞선자리에까지 파장을 미친 것이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할 당시만해도 "30대 그룹"이라면 빛나는
계급장이었다.

그러나 어느날 부터인지 그 빛이 바라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위기관리의
대상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여성들의 반응은 이러한 시대 흐름을 놓치지 않는다.

또다른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이모씨(여)는 "이제는 경영상태가 양호하다는
소위 "빅3"라면 모를까 대기업 사원들과 선을 보는 것은 웬지 꺼려진다"는
반응이다.

그녀는 "현장에서 일해보면 실제로 그렇게 불안할 정도는 아니지만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것이 요즈음의 경제현실"이라고 속 말을 털어놨다.

남성들의 가치관도 경기침체의 영향을 받기는 마찬가지.

불황의 골이 깊어질수록 결혼후에 맞벌이를 원하는 총각들이 늘어나고
있다.

여성들 역시 여기에는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이 표면에 내세우는 이유는 아직도 자아실현과 사회참여가 많은
편이지만 대부분은 경제적인 면을 무시하지 못한다.

"혼자 벌어선 힘들잖아요"라는 간명한 한마디로 그들의 생각은 정리된다.

이같은 사정은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배우자정보회사인 듀오는 최근 수도권의 미혼남녀 각각 1천명씩을
대상으로 전화설문을 실시했다.

결과는 81%에 해당하는 8백8명의 미혼남성이 맞벌이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3백23명의 무려 2백50%에 달하는 수치다.

남성들이 이제는 자신의 힘만으로는 가정을 꾸려가기 힘들다고 두손을 든
것이다.

직업 선호도에도 엄청난 변화가 왔다.

지난해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남성 배우자의 직업은 대기업사원(44.8%)
이었고 그 뒤를 전문직(22.3%) 공무원(9.1%) 등이 따랐다.

그러나 정확히 1년이 지난 지금은 전문직(47.1%) 자영업(15.4%) 공무원
(13.7%)으로 순서가 바뀌었다.

지난해 수위의 영광을 차지했던 대기업사원은 9.8%에 그쳤다.

잇단 부도와 명예퇴직의 위험에서 벗어나야 편안한 장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와관련 결혼정보업체인 (주)에코러스의 이윤희 대리는 "요즈음은 혼수도
자주 쓰지 않는 물건보다 현금을 가져가는 경우가 많다"며 "경제상황이
바뀌면서 여성의 부담이 커지는 것도 하나의 추세"라고 말했다.

<장유택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