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연쇄도산을 막기위해 나온 부도유예협약이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지난 4월에 서둘러 만들어진 "부실징후기업의 정상화촉진과 부실채권의
효율적 정리를 위한 금융기관협약"이라는 긴 이름의 부도유예협약은
말그대로 더이상의 대기업도산을 막고 자력회생의 기회를 주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처음 만들때부터 대상기업및 참여금융기관의 범위를 둘러싸고
말이 많더니 진로 대농 기아 등 협약적용 기업들과 경영권 포기문제를
놓고 홍역을 치루면서 당초의 정책취지가 크게 퇴색했다.

또한 제2금융권의 대출회수를 부추겨 오히려 부도를 축진한 부작용도
적지 않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차라리 기아그룹의 부도유예기간이 끝나는 이달
29일이후 아예 부도유예협약을 폐지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시장원칙에 따라 부실기업은 부도를 내고 법정관리를 하던지 청산해야
하며 이를 위해 회사정리절차를 효율적으로 개정하자는 의견이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중소기업도 부도유예혜택을 받을수 있도록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아무런 대책없이 부도유예협약을 폐지하면
정책의 일관성만 잃고 가뜩이나 불안한 금융시장은 더욱 얼어붙기 쉽다.

또한 회사정리절차를 효율적으로 개선하는 일은 당연히 추진돼야 하지만
적지않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반드시 부도유예 협약의 존폐와 연관지을
필요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부도유예협약을 폐지하건 아니면 계속 적용하건 다음과
같은 보완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첫째 기업은 살리되 부실경영의 책임은 철저히 묻고 회생가능성이 없는
기업은 과감하게 정리하기 위해서 경영권 포기및 인원감축 등 구조조정에
필요한 사전장치를 예외없이 경영권 포기각서를 받아냈다면 기아의 경우
비록 M&A의혹이 있더라도 경영권 포기문제가 지금처럼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둘째 자구노력의 대부분이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매각이지만 지금처럼
경기가 나쁘고 금융시장이 얼어붙어서는 실현이 어려움으로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예를들면 성업공사에서 정크본드 또는 자산담보부채권을 발행해 부동산
매물을 사서 실수요자에게 임대해주고 중장기적으로 공공부문의 부동산보유를
늘려나가는 것은 부실채권정리를 위해서 뿐만아니라 땅값안정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본다.

셋째 최소한의 자금지원으로 최대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제1,제2
금융권간에 그리고 대기업과 협력업체간에 원활한 자금순환이 이뤄져야 한다.

각자의 이익만 챙기거나 뒷감당도 못하면서 무작정 지원대상을 늘리자는
주장은 자칫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며 어음제도개선도 장기연구과제일뿐
당장은 비현실적이다.

지금 당장은 연쇄도산을 막고 신용불안을 방지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부도유예협약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는데 전력투구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