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유예협약이 또 개정됐다.

지난 4월18일 35개은행들의 금융기관 자율협약 형태로 출범, 6월10일 1차
개정을 거친데 이어 두번째다.

은행연합회는 "(금융의) 비상사태라고 볼 수 있는 현 시점에서 부도유예협약
의 폐지는 바람직하지 않다는데 은행장들이 의견을 같이 했다"며 개정사유를
밝혔다.

이와함께 생명보험사도 부도유예협약에 가입함으로써 협약의 포괄적인 힘은
한결 더해졌다.

그러나 폐지와 보완사이를 오락가락한 정책의 혼선만큼이나 협약의 내용도
졸속으로 개정됐다는 지적이 금융계및 재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우선 협약적용 시점부터 1차대표자회의까지의 기한을 10일로 못박고 이
기간내에 경영권포기각서(또는 사표) 감원에 대한 노조동의서등을 제출토록
한 점이다.

은행연합회 노형권상무는 "금융기관의 채권확보와 기업의 회생을 위한
자구노력이행을 확실하게 담보하기 위해 1차대표자회의 전날까지 채권확보
서류를 제출해야만 부도유예협약을 계속 적용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진로 기아사태에서 처럼 경영권포기각서 문제를 놓고 소모적인 실랑이를
벌이긴 싫다는 얘기다.

그러나 과연 10일이라는 짧은 기간내에 경영권포기각서와 노조동의서를
제대로 낼 기업이 있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주식포기각서를 제출하는데 따른 물리적인 시간제약은 차치하고라도 노조가
은행들이 요구하는대로 노조동의서를 써 줄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아사태 경우같이 1차대표자회의를 수차례씩 연기, 시간을 벌어
주는 "편법"도 동원할 수 없게 됐다.

부도유예기업이 발행한 진성어음을 할인해준 금융기관의 환매청구 또는
소구권행사를 유예토록 개정한 것도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중소기업에도 부도유예협약의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자는게 취지지만 결과적
으로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부채질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대두되고 있다.

환매청구까지 봉쇄된 상황에서 은행들이 중소기업 보유어음에 대한 할인에
나설리 만무하다.

관계자들은 은행창구가 더 얼어붙을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소구권행사 유예라는 것도 소구권행사의 법적인 다툼을 해결하는데 상당
기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중소기업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또다른 문제로 지적되는 부분은 채권행사 유예기간의 연장을 삭제한 것.

은행장들은 유예기간 장기화로 인한 금융시장의 불안정을 해소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이로인해 "부실징후기업의 정상화를 촉진한다"는 협약의
취지가 퇴색하는 감도 없지 않다.

부실기업이 2개월이내에 정상화될 가능성도 적은데다 협약종료와 함께
일시에 3금융권 어음이 돌아오면 막아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일부 은행장들은 오히려 채권행사 유예기간의 추가연장을 주장
하기도 했으나 금융당국의 강경한 입장에 밀려버렸다.

이같이 협약개정이 미봉 내지 졸속에 그침으로써 협약폐지론은 다시 고개를
들 전망이다.

부도유예협약 폐지검토로 출렁거렸던 자금시장을 협약 조기개정으로 진정
시켜 보려던 당국의 의도는 또다른 부작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이성태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