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기업의 잇단 부도사태는 국내 금융기관의 집단부실화를 초래하고
이는 국제금융시장에서 국내 기업 또는 금융기관들의 대외신용도를 추락시켜
외화자금조달 금리를 상승시키거나 자금조달 자체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종금사들이나 일부 은행들은 대외신용도 하락으로 해외로부터 외화자금
차입이 어려워지면서 심각한 외화자금난에 직면해 있으며, 이로 인해 원화
환율이 급등하는 등 외환시장의 불안감이 증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금융개방시대의 기업부도는 폐쇄경제하에서의 기업부도에 비해 그 폐해가
지대하고 국민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엄청나게 크다.

폐쇄경제하에서의 기업부도는 그 부정적 영향이 국내경제에 한정되며
기업부도의 충격이 국내금융 시장에서 흡수되고 국제 금융시장까지는 파급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국내금융의 개방화 및 국제화가 크게 진전되어 국내 기업
뿐만 아니라 금융기관들이 국제금융시장에서 대규모의 자금을 조달 운용하고
해외영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규모 국내기업들의 연쇄부도와 그에 따른 국내 금융
기관들의 부실화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국가이미지를 크게 실추시키고 국민
경제에 엄청난 손실을 끼치게 된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97년4월 현재 우리나라 총외채규모가 약1천1백억달러로
추정되는데 기업부도로 인해 외화자금조달 금리가 1%포인트 상승하였을 경우
추가적인 이자부담액이 11억달러(약 9천9백억원)에 달하여 국가 전체에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주고 있다.

이와 같이 추가적인 이자부담액은 1회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내기업
이나 금융기관들의 대외신용도가 예전처럼 회복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발생
하게 되어 누적되는 경제적 손실은 엄청난 규모에 이르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당장 가시적 손실은 발생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국가신인도
하락, 국내기업 이미지 하락으로 인한 수출 저조, 외국인 국내투자 감소 등
중장기적으로 국가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그 피해액이 얼마에 달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또한 금융개방화의 진전에 따라 국내외에 자금유출입이 보다 자유스러워지
므로 기업부도로 인해 국내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증대될 경우에는 외국
자본의 급작스런 유출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는 국내 금융시장의 붕괴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현재는 국내 채권시장이나 단기금융시장이 아직도 완전히 개방되지 않았기
때문에 국제 투기성 단기자금(핫머니)에 의한 시장교란은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국내 주식시장에 유입된 외국자본은 언제든 해외로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 이들 자본의 해외유출이 국내금융시장에 커다란
충격을 줄 수 있다.

이와 같이 한보사태 이후 대기업들의 연쇄부도사태로 인한 국민경제적
폐해는 상상외로 엄청나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다.

더구나 금융개방화가 진전되면서 기업부도는 폐쇄경제하에서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금융위기상황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

따라서 기업, 금융기관, 정부 등 각 경제주체들은 다음과 같이 새로운
인식전환으로 각 부문에서 금융개방시대에 걸맞는 경제행위와 정책대응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첫째 기업들이 금융기관이나 국민경제를 볼모로 삼아 덩치키우기식의
사업확대를 추구하는 풍토가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외형위주보다는 수익성위주의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고, 문어발식 사업
다각화보다는 비교우위가 있는 사업분야에서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번 연쇄부도사태에서도 교훈을 얻을 수 있듯이 기업들은 취약한 재무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비업무용 부동산을 매각하고 수익성이 없는 사업은
과감히 처분해야 한다.

이와 같은 뼈를 깎는 재무구조 개선과 사업구조 조정을 통해 국내기업들은
대외경쟁력 확보 및 대외신용도를 높이고 국제금융시장에서 싼 이자로
자금도 조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둘째 금융기관은 더이상 부실채권이 발생되지 않도록 청탁이나 외압을
배제하고 과학적인 여신심사기법에 의해 기업대출을 해야 하며 수익성위주의
경영을 도모해야 한다.

또한 금융기관은 기존의 부실채권을 정리하고 자기자본비율을 높여 건전성
및 수익성을 제고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인원감축, 부동산매각, 점포정리, 해외영업축소 등을 통한 자구
노력과 경영합리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금융개방시대에 금융기관의 입장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국내외
금융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소유 및 지배구조의
개선을 통해 금융기관의 책임경영체제가 시급히 확립되어야 한다.

그리고 국제금융시장에서 대외신용도를 높일 수 있도록 회계제도, 공시제도
등을 개선하여 경영의 투명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셋째 정부는 가능한한 시장경제원리에 충실하되 유사시에는 위기를 슬기
롭게 극복할 수 있는 위기능력을 제고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도 유사시의 조치는 인정하고 있듯이 경제위기
의 조짐이 나타날 때 정부는 시장논리만 고집하지 말고 신축적이고 신속한
대응책을 통해 경제안정화를 이룩해야 한다.

특히 세계금융시장은 단일시장으로 통합되어 가기 때문에 한 나라의 금융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제기구나 주변국가들의 협조가 대단히 중요하다.

따라서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 뿐만 아니라 아시아 국가들과의 경제협조
체제를 공고히 구축할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