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첨단과학산업단지(테크노파크)조성사업이 당초 취지와는 다르게
변질되고 있다는 소식은 과열 기미를 보이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의
테크노파크 유치경쟁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지난 89년 대통령 공약사업으로 시작된 광주 테크노파크 개발사업은
2002년까지 모두 5백86만평을 조성한다는 계획아래 지금까지 6천억원
이상이 들어간 1단계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그러나 핵심기능을 담당할 연구소부지 26만평과 교육용부지 30만7천평중
연구소부지는 지금까지 단 한평도 분양되지 않았으며 교육용부지도
13만평밖에 팔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따라 토지공사측은 연구소부지 16만평을 떼내 주거용지로 전환,
건설업체에 매각하는 대신 연구소부지의 분양가를 대폭 낮춰 분양을
활성화할 계획이라고 한다.

토공의 어쩔수 없는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광주
테크노파크가 이 지역의 희망으로 자리잡길 기대했던 주민들이 "첨단이라는
허울을 쓴 아파트단지"로의 전락을 우려하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광주 테크노파크가 안고 있는 이러한 고민은 오늘날 한국판 실리콘밸리
조성을 꿈꾸는 많은 지자체들이 진지하게 검토해야할 문제점임에 틀림없다.

통상산업부가 지난 6월말 마감한 테크노파크 신청 사업자접수에는 2장의
티켓을 놓고 제주도를 제외한 14개 광역 지방자치단체가 모두 신청서를
냈으며 여기에 전국 90여개 대학과 1천5백여 기업도 가세했다.

"전자공화국"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의 열기가 아닐수 없다.

물론 이같은 테크노파크 붐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지역경제를 살리고 대학의 위상을 높일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첨단단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과제가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테크노파크란 그 지역의 대학 연구기관 기업및 모험자본과
통신인프라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돼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조건을 두루 갖춘
입지를 선정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지자체들은 저마다의 여건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하나같이 미국의
실리콘밸리나 대만의 신죽단지를 모델로 하겠다니 의욕이 지나치다고 하지
않을수 없다.

또 가장 큰 관건인 재원조달 면에서 대부분 구체적인 계획이 결여돼
있는 것도 문제다.

테크노파크의 성공을 위해서는 벤처자금의 유입이 필수적이다.

실리콘밸리가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도 매년 30억달러의 모험자본이
이곳으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보수적인 금융관행으로 보아 지방에 대규모 벤처자금
시장이 형성될수 있을지 의문이다.

테크노파크는 토목공사만으로 조성되는 것이 아니다.

광주단지에서 보듯 적합한 여건과 치밀한 계획없이 정치적 고려나
즉흥적 결정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전국을 테크노파크화 하겠다는 의욕보다는 치밀한 계획아래 한둘이라도
제대로 경쟁력을 갖춘, 제 역할을 할수 있는 첨단단지를 조성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