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련 김종필 총재가 2일 금융실명제의 전면폐지를 주장하고 나섰다.

김총재는 이날 이례적으로 기자간담회를 자청, "금융실명제를 여기저기
손보기보다는 전면적인 폐지가 옳다고 본다"며 "현 경제난의 근본적인 원인이
금융실명제로 인한 부작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없애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총재의 이같은 주장은 "실명으로 거래하는 한 예금과 입출금에 대한
세무조사와 자금출처의 조사를 금지해야 한다"는 기존의 당론과 맥을 같이
하지만 한발 더 나아간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날 당 안팎의 관심은 김총재가 갑자기 금융실명제의 전면폐지
발표를 위한 기자간담회를 자청한 배경에 모아졌다.

김총재는 이날 오전 자택에서 3일 있을 모방송국의 TV토크쇼 출연준비를
하다가 갑자기 기자간담회를 열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관련 자민련의 한 핵심당직자는 "김총재가 금융실명제에 대한 견해를
여러번 피력했으나 언론에 제대로 반영된 것같지가 않았다"며 "금융실명제에
대해 좀더 강경한 얘기를 해달라는 시중의 여론도 있어 기자간담회를 갖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최근 신한국당의 이회창 대표가 국면전환을 위한
여러 궁리를 하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금융실명제의 이슈화인 것으로
알고있다"고 말해 신한국당의 이대표에 앞서 "선수를 친 것"이라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

허남훈 정책위의장은 "경제는 심리적인 효과가 큰 영향을 미친다"며
"김총재의 회견으로 실명제 폐지론이 부각되면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허의장은 "현재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금융실명제 입법안에도 차명거래를
막을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많은 실명제"
폐지를 주장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한편 자민련은 앞으로 안보와 경제분야에 대한 핵심적인 과제들을 선정,
김총재의 기자회견 형식으로 해법을 제시해 나가기로 했다.

김총재로 하여금 경제와 안보문제에 대해 과감한 해결책을 발표토록해
"경륜있고 강력한 지도자상"을 부각시킨다는 것이다.

김총재가 이날 회견에서 "리더십의 부재"를 강조한 것도 이같은 맥락이라는
해석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현 국정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마을 운동과 같이
국민적 공감대를 이끌어낼수 있는 국민적 캠페인이 필요하다"며 "김총재가
경제와 안보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강력한 리더십"
이미지를 부각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 김태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