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로관련사 직원 "북한 근무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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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현대건설 대우 동아건설 등 북한 경수로 사업에 참여하고있는 주요
업체 직원들간에 북한 근무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3일 한국전력과 업계에 따르면 지난 달 19일 착공된 북한 경수로 건설
사업에 올말까지 총 2백여명이 투입되고 순차적으로 계속 증원될 예정임에
따라 사업 참여 업체내에서는 북한 근무 가능성을 타진하는 사람들이
잇따르고 있다.
현재 함남 신포 금호지구의 부지조성공사에 투입된 우리 인력은 모두
85명.
이들에 이어 이달 하순 10여명 등 공사장 인력 투입은 계속될 계획이므로
각 업체에서는 호기심도 채우고 국내보다 두둑한 급여(약 1.8배)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때문에 북한 근무의 손익을 따져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들 업체에서는 직원들간에 북한 근무와 관련해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희망자 일부는 관련 부서를 직접 찾거나 전화로 북한 근무에 대해 꼼꼼히
묻고 있다.
물론 북한 근무를 모두 선호하는 것도 아니고 또한 희망한다고 전부가
가능한것도 아니다.
북한이라는 지역 특성상 우선 신원조회의 관문을 통과해야 하고 또한
원자력 및국제 공사 경험, 그밖에 개인적 능력 및 소양 평가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또 예측 불가능한 대북관계 특성상 종종 가족이나 애인의 반대가 심해
본인들의 희망대로 북한 근무가 순조롭지만도 않다.
최근에는 주요 건설업체의 하도급 업체 한 직원이 북한 근무길에 오르려다
애인이 극구 만류하는 바람에 "눈물을 머금고" 포기하는 사례도 발생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1년간의 부지 조성공사가 완료되고 곧이어 본격 공사에 들어가게 되면
훨씬 더 많은 인력, 특히 공사가 최고조에 이를 때는 3천5백명까지 북한에
투입될 예정이므로 북한 근무에 대한 관심도 더욱 높게 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예상이다.
업체 관계자는 "지난해 9월 북한 잠수함 침투 사건으로 올초까지만 해도
북한근무를 꺼리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으나 최근 현장 사정이 알려지면서
거부감이 많이 완화됐으며 인력충원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이동우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4일자).
업체 직원들간에 북한 근무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3일 한국전력과 업계에 따르면 지난 달 19일 착공된 북한 경수로 건설
사업에 올말까지 총 2백여명이 투입되고 순차적으로 계속 증원될 예정임에
따라 사업 참여 업체내에서는 북한 근무 가능성을 타진하는 사람들이
잇따르고 있다.
현재 함남 신포 금호지구의 부지조성공사에 투입된 우리 인력은 모두
85명.
이들에 이어 이달 하순 10여명 등 공사장 인력 투입은 계속될 계획이므로
각 업체에서는 호기심도 채우고 국내보다 두둑한 급여(약 1.8배)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때문에 북한 근무의 손익을 따져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들 업체에서는 직원들간에 북한 근무와 관련해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희망자 일부는 관련 부서를 직접 찾거나 전화로 북한 근무에 대해 꼼꼼히
묻고 있다.
물론 북한 근무를 모두 선호하는 것도 아니고 또한 희망한다고 전부가
가능한것도 아니다.
북한이라는 지역 특성상 우선 신원조회의 관문을 통과해야 하고 또한
원자력 및국제 공사 경험, 그밖에 개인적 능력 및 소양 평가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또 예측 불가능한 대북관계 특성상 종종 가족이나 애인의 반대가 심해
본인들의 희망대로 북한 근무가 순조롭지만도 않다.
최근에는 주요 건설업체의 하도급 업체 한 직원이 북한 근무길에 오르려다
애인이 극구 만류하는 바람에 "눈물을 머금고" 포기하는 사례도 발생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1년간의 부지 조성공사가 완료되고 곧이어 본격 공사에 들어가게 되면
훨씬 더 많은 인력, 특히 공사가 최고조에 이를 때는 3천5백명까지 북한에
투입될 예정이므로 북한 근무에 대한 관심도 더욱 높게 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예상이다.
업체 관계자는 "지난해 9월 북한 잠수함 침투 사건으로 올초까지만 해도
북한근무를 꺼리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으나 최근 현장 사정이 알려지면서
거부감이 많이 완화됐으며 인력충원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이동우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