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호 성창기업계장(38).

그에겐 올 9월이 일생 최고의 달이 될 것 같다.

3일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장애인 고용촉진 대회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기 때문이다.

표창받은 사람들이 많지만 그의 감회는 남다르다.

한쪽 팔만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극복하고 다른 직장인들의
귀감으로서 최고의 영예를 안아서이다.

그가 부산시 사하구 다대동의 성창기업 합판공장에 입사한 것은 지난 77년.

그러나 입사 10개월만에 불행이 닥쳐왔다.

보일러실 옥상에 있는 감속기 체인에 왼손 옷자락이 감기면서 한 팔을
영원히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사춘기인 18세에 당한 사고였기에 그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만큼
컸다.

졸지에 후천적 장애인이 됐기에 혹독한 좌절감을 맛봐야 했다.

하루에도 몇번씩 자살충동까지 느끼면서 잠못이룬 날이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이런 절망의 나락에서 그가 일어설 수 있었던 데는 어머니 남영자씨(61)의
극진한 사랑과 보살핌이 큰 힘이 됐다.

"신체적인 장애는 불편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남들과 같지 않느냐.
생각과 의지만 똑바로 가진다면 제2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어머니의 말에 용기를 얻었다.

마침내 3년만에 고통의 병원생활을 마감하고 회사에 복직했다.

그러나 전기공인 그에게 기다리고 있는 일은 심부름과 사무실 보조업무 뿐.

당연히 출근해도 신바람나는 일을 할 수 없었다.

회사를 거만둘까 수차례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나 정신이 살아있으면 살 수 있다는 각오로 전기기술을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전문대 세무회계학과 야간부에도 진학, 2년만에 졸업하는 배움의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한손으로 책가방을 들고 시내버스를 타고가다고 넘어진게 한두번이
아니어서 버스타기조차 두려웠습니다."

백계장은 당시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회사는 이같은 백씨의 능력과 근면성을 높이 샀다.

지난 84년 현장기능직에서 관리직으로 승급, 전체 전기업무는 물론 작업
계획현장보수 등을 도맡아 처리하고 있다.

특히 지난 92년부터 자동화되면서 그의 손길은 더욱 바빠졌다.

한팔이 없어도 컴퓨터 기술만 익히면 손쉽게 전기를 다룰 수 있다고 판단,
남들보다 앞서 학원에 다니기도 했다.

한손이 없어 노트북인 컴퓨터를 작동시키는데 힘이 들어 그만두고 싶은
때도 많았지만 이를 악물고 며칠밤을 꼬박 새우면서 기술을 익혔다.

올해로 전기분야에 몸담은지 만20년.

그야말로 ''도사''의 경지다.

백씨는 노력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큰 소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어려운 동료직원에게 선행을 베풀고 화목한 회사
분위기를 만드는데도 앞장섰다.

장애인은 자신보다도 더 어려운 다른 사람을 돕고 적극적으로 이웃과
어울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게 그의 철학이다.

"절망도 많이 했는데 여러사람이 도와줘서 이겨낼 수 있었어요. 이제 그
분들에게 받은 도움을 갚으면서 생활하겠습니다"

<부산=김태현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