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정비소 직원이 수리가 끝난 차를 주인의 집까지 갖다주는 도중 사고가
발생했다면 차주인은 사고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까.

89년 11월 이모씨는 자신의 차가 고장나자 평소 잘 알고 지내던 A수리소의
박모씨에게 전화를 걸어 수리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박씨는 이씨의 집에 있던 차를 정비소까지 끌고와 고장난 부분을
고쳤다.

수리가 끝나자 박씨는 차를 돌려주기 위해 다시 이씨의 집으로 차를
몰고갔다.

그러나 불행히도 박씨는 경기 파주군 월룡면 편도2차선 도로에서 화물트럭을
들이받는 대형사고를 내고 말았다.

제한속도를 초과, 시속 80km로 달리던 박씨가 전방에 주차된 11t 화물트럭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면서 발생한 사고였다.

이 사고로 조수석에 탔던 김모씨가 사망했다.

김씨의 가족들은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소송을 준비했다.

소송 상대는 바로 차주인 이씨.

이씨는 차량수리를 맡긴후 차를 아직 돌려받지 않은 상태이므로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고 차량수리업소에 책임이 있다며 반박하고 나섰다.

차량을 돌려받기 전까지는 자신에게 "운행지배권"이 없었다는 주장을 편
것이다.

즉 차량의 운행시기와 방법, 운전 당시의 상황변화에 따른 통제권은
전적으로 운전자 박씨에게 있었던 만큼 자신은 사고책임이 없다는 것.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가는 치열한 법정싸움 끝에 이씨의 패소로 끝났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자동차 수리를 위해 차를 정비업자에게 넘겨준 경우
수리하는 동안에 생긴 사고에 대해서는 정비업자가 책임져야 한다"며 "그러나
수리를 끝낸후 차주인에게 돌려주기 위해 운행하는 도중에 생긴 사고나
수리를 위해 정비소로 끌고가는 도중에 생긴 사고에 대해서는 책임자를
일률적으로 단정할수 없고 구체적인 사정을 감안해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어 "이 사건의 경우 차주인 이씨와 정비업자인 박씨는 잘 아는
사이여서 평소 이씨가 전화로 수리를 의뢰하기만 하면 박씨가 차를 가져가
수리한후 직접 집에까지 가져다 주었다"며 "그렇다면 이씨는 차를 반환받는
장소를 제3의 장소, 집, 정비소 중 집으로 결정한 것으로 보이므로 사실상
운행지배권을 가지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씨가 자신의 차에 대한 통제권을 완전히 상실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
집으로 가져오라는 지시를 내린 것임으로 차주인으로서의 통제권을 간접적
으로 행사했다는 것이 대법원이 내린 최종판단인 것이다.

결국 이씨는 사고를 낸 박씨와 함께 이 사건에 대한 공동책임을 떠안게
됐다.

<이심기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