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호 < 연세대 교수 >

우리에게 결여돼 있는 것의 하나가 건전한 독서문화다.

사춘기나 학생시절에 책을 접하는 척하다가 이내 멀리해 버리고 만다.

그래서 독자층이 얇다.

어느 나라에서나 문학독자층은 비교적 넓은 편인데 우리쪽에선 아주 좁다.

역시 청년층으로 한정돼 있다.

문학독자가 적은 것은 독서문화 결여의 반영이지만 한편 문학쪽에서 성숙한
성인독자를 끌어당기는 힘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선후를 가리기 어려운 표리관계다.

우리 문학이 청소년 독자를 대상으로 성립돼 왔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케
한다.

성숙한 성인독자를 염두에 두고 정사에 충실한 역사소설을 보여주겠다는
기개로 출발한 서기원씨의 장편소설 "광화문"은 한말의 역사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말의 위기가 소설의 무대가 된 것은 무엇보다도 현재와의 관련 때문이다.

왕조의 붕괴와 식민지로의 전락을 경험한 한말의 역사는 우리로 하여금
오늘의 난국을 헤아리는데 더할 나위없는 참조틀이 되어준다.

이 책의 중심인물은 흥선대원군이다.

작가는 그를 "조선조를 통해서 리더십을 발휘한 몇 안되는 통치자중의
한사람"이라고 파악한다.

개혁을 통한 정치적 안정을 도모하려던 그의 야망은 좌절로 끝나고 만다.

그럼에도 그는 공을 빙자해 사리를 챙기는 잡배는 아니었다.

그의 좌절 원인은 무엇이며, 그는 어떻게 평가돼야 하는가.

역사소설이 역사적 인간관계의 추구만을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다.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짓거리를 보여주는 것이 일차적 소임이다.

등장인물이 살아있지 못해서는 소설이 성립되기 어렵다.

그러나 너무 삽화 위주로 흘러도 결국 야담이 돼버리고 만다.

정사지향의 "광화문"은 우리의 오늘을 돌아보고 우리 자신을 검증하게
하는 진지한 소설이다.

당대의 언어와 관습에 대해서도 많은 정보를 제공해준다.

또 엄격성이 사라져가는 문체파괴의 시대에 간결하면서도 견고한 문체를
보여주고 있다.

정치의 계절에 읽어서 얻는 바가 많은 정치소설이다.

특히 성숙한 성인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경세의 책이기도 하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