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계절이 어느덧 다가왔다.

지겹도록 무덥던 여름의 장막이 걷히고 서늘한 바람이 맑은 기운을
솟아나게 하는데다 낮보다 밤이 길어져 책을 읽기에 안성맞춤인 계절이
되었기 때문이다.

일찍이 중국 당나라의 대문장가였던 한유도 가을을 등불과 친할수 있는
계절이라고 하여 책을 읽기에 좋은 계절임을 강조하지 않았던가.

때마침 "독서의 달"인 9월을 맞아 "문화의 세기, 책 읽은 사람이 이끌어
갑시다"라는 슬로건 아래 독서의 생활화를 위한 기념행사들이 전국
각지에서 열리게 된다는 소식이다.

최근의 국민독서실태조사를 보면 성인 1인당 월평균 독서량이 0.8권으로
일본의 1.6권에 비해 절반밖에 안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그동안 자부해온 "문화국민" 의식이 허상이었음을 말해주는 징표의
하나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번 "독서의 달"도 "독서후진국"이라는 오명으로 자책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옛날만 하더라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사리를 판단하는 눈을 밝게 하고
어리석음을 총명함으로 바꿔놓을 순수한 목적에서 책읽기를 즐겼다.

반면에 부귀나 공명을 얻으려는 세속적 의도로 책을 읽는 사람들도
많았다.

오늘날의 독서에는 대략 두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자신의 직업과 관련이 있는 전문적 독서이고 또 하나는
지식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일반교양을 위한 독서다.

그중에서도 현대사회는 전문적 독서의 필요성을 증대시키고 있다.

다시 말해 생활의 수단으로서 독서량이 늘어나야만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한국인의 독서량은 제자리걸음 내지는 뒷걸음질쳐 왔다.

나날이 발전의 속도가 빨라지고 갖가지 정보의 양이 늘어나는 시대에
살면서도 그 대세를 외면해 버리고 있는 것이다.

단편적 정보만을 제공해주는 전파매체를 선호하는 경향이 늘어가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일본의 경우를 보면 꼭 그렇진 않다.

국제사회의 도도히 흐르는 대변혁의 물결속에서 독서를 외면하게
될 때에는 미아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가을을 맞아 한권의 책이라도 읽겠다는 마음을 가다듬어 보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