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경제가 좀처럼 혼미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어 앞으로 경제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불안해 한다.

수익보다 외형을 중시한 한국 기업들의 성장전략이 경기부진과 경쟁심화로
한계에 부딪치면서 기업들의 부도가 속출하고 있다.

금융기관들의 부실이 현재화하면서 금리상승 주가하락 환율상승 등 금융
시장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우리 경제에 대한 해외 투자가들의 평가가 낮아지면서 일부에서는 멕시코나
동남아에서와 같은 통화위기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대기업 부도나 금융시장의 불안에 대한 정부의 정책대응이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고 정부의 위기관리능력에 대한 의구심까지 팽배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여권내의 불안정한 정치상황도 경제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과연 우리경제는 신문이 대서특필하고 모든 국민들이 불안해 할만큼 정말
위험하고 비관적인 것일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우리경제가 고비용-저효율 구조로 인해 경쟁력을
크게 잃고 있다는 점이다.

선진 경쟁기업에 비해 우리기업들의 재무구조는 부실하고 기술력과
수익력도 취약하다.

경기부진으로 소비와 투자도 예년에 비해 크게 위축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경제를 이끌고 가는 기관차라고 할 수 있는 수출은 지난 7월
이래 10%가 넘는 증가율을 보이고 있고, 4.4분기중에도 10% 내외의 증가율이
기대된다.

이에 힘입어 금년의 경상수지 적자는 작년의 2백37억달러에서 금년에는
1백30억달러대, 내년에는 1백억달러 이하로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GDP증가율은 금년도 하반기에 6.5%, 불안심리가 진정되고 소비와 투자
심리가 다소 회복될 것으로 보이는 내년도에는 7% 내외가 예상된다.

한국경제라는 숲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병들어 죽어가는 크고 작은 나무들이
있지만 숲 전체로는 생기를 되찾을 수 있는 국면에 접어들기 시작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경기순환적인 측면에서는 수출주도의 완만한 경기회복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고, 구조적인 측면에서는 기업들의 연쇄부도사태 등을 통해 엄청난 거품
제거 작업이 작년부터 알게 모르게 진행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현재의 금리 환율 주가 등 각종 가격지표의 움직임은
우리 실물경제의 실상 이상으로 한국경제를 둘러싼 심리적 불안감을 크게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렇게 된 데에는 신뢰를 잃은 정부정책은 물론 우리경제에 대한 깊고
균형된 분석없이 선정적인 보도와 위기감을 실제이상으로 고조시킨 일부
언론과 연구기관들의 책임도 없지 않을 것이다.

우리경제가 진정으로 활기차고 강한 경제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내야
할 중차대하고 시급한 과제가 있다.

바로 우리경제의 구조조정, 구조개혁이다.

조정의 성공여부가 결국 우리기업들의 생사, 나아가 우리경제의 향방을
결정짓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구조조정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스럽다.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되겠지"하는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거나 "과거의
방식을 조그만 바꾸면 되겠지"하고 미봉책을 쓰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구조조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심각한 위기의식과 단호한 실천의지에 더해 구조조정은 시간과 비용을
요구하며 특히 뼈를 깎는 고통을 수반한다.

기업에 있어 구조조정은 고통을 의미한다.

구조조정이란 조직을 재편하고 인력을 감축하는 일, 씀씀이를 줄이는 일,
수익성이 없는 사업을 잘라내는 일이다.

생산성 향상과 신제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 창의성을 더욱 발휘하고 낮은
봉급에 더 열심히 일하도록 조직원들을 설득하고 독려해야 함을 의미한다.

외형감소로 인한 위상의 저하, 직원들의 사기저하도 감수해야 한다.

정부나 정치권에 구조조정이란 달콤함을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돈 안드는 정치를 해야 하고, 많은 권력과 권한을 포기해야 한다.

시장이 시장답게 기능하도록 제도와 여건을 정비하고, 정부역할을 축소하며
규제를 완화하여 경제운용을 가능한 한 시장경쟁원리에 맡겨야 한다.

금융계와 재계를 지배권에서 놓아 보내야 한다.

또 인기없는 정책도 펴야 한다.

근로자들에게 인기없는 해고나 감봉조치가 보다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기업의 구조조정이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대기업에 우호적인
조치도 취할 수 있어야 한다.

구조조정은 국민들에게도 비용을 청구한다.

비용은 임금 삭감이나 실직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다.

연공서열에 따라 지불되던 임금이 성과와 능력에 비례하는 봉급제도로
바뀔 가능성도 크다.

평생직장의 꿈이 꺾이고 평생고용을 위해 핵심역량을 스스로 키워야 하는
불안함과 고단함도 불가피하다.

기울어가는 회사의 종업원들이 임금동결에 반대하고 감원에 동의하지 않는
다는 것은 모두가 함께 망하자는 것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국가차원에서나 기업차원에서 살아남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구조조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변하는 세상에 맞추어 우리가 자발적으로 구조조정을 서두르지 않으면
시장은 무자비하게 구조조정을 강요해 올 것이다.

더욱 비싼 대가를 치르게 하고 다욱 뼈저린 고통을 겪게 하리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