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가 대회유치 1년3개월이 넘도록 기본사항인 전용
구장 건설문제조차 해결되지 않아 차질이 불가피할 것같다는 소식은 모든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으려니 믿고 있던 국민들에게 뜻밖의 소식이다.

서울시는 지난달 월드컵조직위가 요구해온 전용구장 건설을 거부, 잠실주
경기장을 개.보수해 월드컵 주경기장으로 사용하고 뚝섬에 건립될 돔구장을
보조경기장으로 사용키로 결정했었다.

그러나 조직위가 이에 반발하고 돔구장부지 특혜매각 의혹이 불거지자
돔구장건설을 백지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여론의 지탄이 빗발치자 당황한 서울시는 지난달 22일 "정부의
충분한 재정지원이 있을 경우" 전용구장건설에 적극 협조하겠으며 돔구장도
당초 명시한대로 월드컵대회를 치를 수 있는 규모로 짓겠다고 다시 태도를
바꾸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돌아가는 판세로 보아 전용구장 건설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다.

우선 부지선정부터가 문제다.

공청회 등의 절차를 거쳐 서울시의회의 동의를 얻는데만도 족히 1년은
걸릴 것이고, 설계에만도 6개월 이상이 소요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또 사유지가 포함돼 있는 방이동과 상암동 등이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지만
사유지매입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여기에 최대의 난관인 3천5백억원에 달하는 자금조달계획에 이르면
서울시와 정부, 조직위와 축구협회의 입장이 각각 달라 한바탕 분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전용구장건설의 전제조건으로 정부의 충분한 재정지원을 내건 것으로 보아
서울시는 시유지를 제공한 것으로 충분하지 않느냐는 주장을 내놓을게 뻔하고
정부에서는 애당초 서울시가 1천억원을 내겠다고 한 약속을 다그칠 것이다.

또 지방자치단체들로부터 서울만 특혜를 주고 지방은 내팽개칠 것이냐는
항의가 빗발칠 것은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이러는 사이에 시한이 촉박하게 되면 전용구장건설은 물리적으로 불가능
하게 되어 서울시의 원래 계획대로 잠실주경기장을 개.보수해서 개막식을
치르고 야구장이건 뭐건 가릴것 없이 일단 완성된 돔구장이니까 보조경기장
으로 이용하자는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될 것이다.

일이 그렇게 흘러가게 내버려둬서는 안된다.

아무리 우리의 경제사정이 나쁘다 해도 그처럼 어려운 월드컵 유치를
성사시켜놓고 전용구장 하나 없어 일을 그르친대서야 말이 되겠는가.

부지확보가 어렵다면 당초 유치신청서에서 밝혔던대로 동대문운동장을
전용구장으로 개축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는 것도 한 대안일 수 있다.

우리와 월드컵을 공동개최하는 일본은 6만석 이상의 전용구장을 이미 두
곳에 짓고 있고 4만석의 경기장 8곳도 확보했다고 들린다.

우리에겐 이제 시간이 없다.

시장의 사퇴로 행정공백을 겪고 있는 서울시에만 이 문제를 맡겨놓고 있을
일이 아니다.

월드컵유치가 범국민적 염원이었다면 당연히 정부가 용단을 내려 전용구장
건설에 발벗고 나서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