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사대부고를 졸업한지도 어언 36년.

일가를 이루었고, 사회에서 중진급에 서게되고, 더러는 일선에서
물러나고, 또 자녀들의 청첩장이 심심찮게 날아들기 시작하던 5년여전
우리에겐 숨가쁘게 달려온 세월속에 묻혀 숫제 잊고 살았던 내 존재에
대한 회의가 쏙 머리를 내밀기 시작했다.

이심전심이랄까.

잃었던 자신의 청정한 옛모습이 그리워 옛친구들을 찾아 모이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일삼 등산모임".

맑은 날엔 멀리 실개천에 부는 청풍조차 보이는 듯해서, 흐린 날엔
산주름 파도치는 자태가 오히려 선명해서, 비오는 날엔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소리 들으며 빗물에 소주 칵테일 타마시고 빗물에 밥말아 먹어가며,
여학생은 남학생을, 남학생은 여학생을 염려해주는 인정에 맘도 몸도
따뜻해지는 맛에 어쩌다 일박, 먼바다 섬에 들면 바닷가 캠프파이어에
취해 불길도 꺼져가는 동틀녘까지 애잔한 노래와 담소로 밤을 지새우고
해돋이를 기다리면서 50대 중반의 남학생 여학생들은 고교시절로 되돌아가
새날 새마음을 창조하기도 한다.

우리 회원수는 줄잡아 50여명.초행의 동문은 누구나 정상에 올랐을때
돌에 오른발을 올려놓고 노래 한곡조 뽑는 의식을 엄숙하게 치르고 나서야
환영의 박수갈채와 더불어 회원이 된다.

지금은 울산 현대여자고등학교 교장으로 있는 초대회장 송세웅 동문과
정성자 총무가 3년간 모든 노고를 아끼지 않았으며,현재 신촌 서강대앞에서
보석상을 하는 정국효 회장과 뿌리약국대표 조지명 총무가 사전답사를 하고
길표시 리본 매놓고 오는 일에서부터 뒤풀이까지 2년여간 철저한 봉사를
하고 있다.

매월 첫 일요일이면 평균 25명내지 30여명이 어김없이 산행에 동참한다.

한달에 한번 이처럼 우리 회원은 땀흘려 멀고 가까운 산에 오르면서
잃었던 때와 나를 찾기도 하고, 중년의 군살도 빼고, 도시에 찌든 삶의
때도 벗고, 크고 작은 근심도 날려보내면서 산의 정기를 담뿍 받아 욕심
모르는 자연을 닮아가려고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