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치마를 벗어 던져라"

요즘 주부들간에 유행하는 말이다.

여성인력 개발이라는 거창한 차원에서가 아니다.

명예퇴직 감량경영 등 거세게 불어닥치는 고용불안 때문이다.

남편만 믿고 살 수 없게 된 주부들이 고통분담차원에서 돈벌이에 나서는
것이다.

특히 자녀들이 어느정도 큰 중년주부들이 부업전선에 맹렬히 뛰어들고
있다.

주부 문연주(40.구로구 독산동)씨는 지난달 남편과 줄다리기 끝에 집근처에
국수체인점을 냈다.

상장회사인 K전자회사 과장이 남편이지만 퇴직에 대한 불안을 떨칠 수
없어서다.

마음을 독하게 먹고 28평형아파트를 담보로 7천만원을 꿨다.

아침에 남편이 출근하고 자녀를 학교에 보낸뒤 점심때부터 밤 11시까지
꼬박 식당일에 매달린다.

"처음에는 화를 내던 남편도 이젠 퇴근후엔 식당일을 거들겠다고 나와요.

사실 남편이 다니는 회사가 요즘 어렵거든요"

하지만 문씨의 경우는 그래도 잘 풀린 케이스다.

최경순씨(43.관악구 봉천동)는 최근 시올케 소개로 유제품회사 주부배달원
으로 겨우 취직했다.

그나마 낫다는 보험사의 생활설계사 모집에 여러번 원서를 냈지만 학력
좋고 나이 젊은 주부들에게 번번히 밀려난 뒤였다.

"아이들 교육비는 날로 늘어나는데 남편 월급은 올해 동결됐어요.

어쩔 수 있나요.

나라도 나서야지..."

이처럼 취업전선에 뛰어든 중년주부들은 각종 배달업무에서 아르바이트
파트타이머 등 가리지 않는다.

이같은 분위기를 반영, 여성취업자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여성취업자는 8백57만2천여명.

지난해 같은 기간의 8백23만3천명보다 4.1% 증가했다.

통계청 자료에도 올 상반기 여성취업자중 30세에서 54세 나이인 중년 주부
취업인구가 4백73만명으로 여성취업인구의 절반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주부취업시대"다.

그러나 앞치마를 벗어던진 주부들은 많지만 일자리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실제로 2/4분기동안 20만8천명의 여성취업자가 일자리를 잃어 여성실업자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0% 증가했다.

주부들간 일자리 구하기 경쟁이 그만큼 거세졌다는 얘기.

이에따라 주부들이 취업이나 부업에 나서는 노력도 각양각색이다.

각종 자격증학원을 주부들이 점령한지는 이미 오래다.

간간히 열리는 창업설명회 재테크강연회 장소가 주부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것도 이래서다.

많은 주부들이 다단계판매의 판매원으로 나서고 있다.

또 보험설계사를 지망하는 주부들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주부들의 구직 바람은 예전과 같은 "복부인"의 치마바람이 아니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변화라 할 수 있다.

이제 앞치마를 두르고 저녁을 준비하는게 주부의 미덕인 것처럼 여겨지던
시대는 지나간 셈이다.

경기불황을 이기기 위해 굳은 각오로 경제전선에 뛰어든 맹렬여성전사들.

그녀들은 사냥할 때 불편하다해서 한쪽 가슴까지 잘랐다는 남아메리카
아마존 강에 살았다는 "아마조네스"를 연상시킨다.

이들이 단순한 노동력 제공자로 전락하지 않고 자기능력을 개발하도록
이끄는 것은 문민불황이 던진 또 하나의 숙제다.

<김준현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