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가 잇달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되고 자동차 등 시장개방압력
을 받는 "통상위기" 상황에 처해 있는데도 정부 유관부처간 갈등과 협조
부재로 효과적인 협상전략 마련에 차질을 빚고 있다.

특히 재정경제원 통상산업부 등 경제부처와 외교협상을 담당하는 외무부간
알력이 심해 최근 통상현안인 주세분쟁과 한.미 자동차협상 등에서 힘이
한곳으로 모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유럽연합(EU)과 미국이 WTO패널설치를 요구한 주세분쟁의 경우 현재 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재경원과 외무부간 신경전이 치열하다.

그동안 주세분쟁에 따른 두차례에 걸친 양자협상에서는 재경원측이 대표로
참가했지만 패널설치 이후의 "본게임"부터는 "전문외교관"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게 외무부측 논리다.

외무부 관계자들은 특히 그동안 재경원측이 주세분쟁을 협상경험이 거의
없는 세제실에서 담당토록해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재경원측은 최종판단은 주무부처인 재경원에서 해야 하고 외무부
등으로부터 전략적인 조언 등은 들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외무부측은 또 재경원이 앞으로 패널설치 이후의 법률적 논쟁에 대비,
국내에 있는 국제변호사를 활용하려는 것에 대해 "우물안 개구리식"식
전략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명망이 있는 국제변호사들을 동원해야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불협화음은 미국의 한국산 컬러 TV에 대한 WTO제소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당초 통산부측은 미국과의 통상마찰이 득이 될게 없고 업계에서 반대한다는
등의 이유로 미국에 대한 제소를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산부는 외무부측에서 미국제소 사실이 흘러 나가자 공식적으로 부인성명
까지 냈다가 며칠후 이를 번복, 미국제소결정을 전격 발표했다.

이에 대해 미국제소를 주장해 오던 외무부측은 통산부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들이다.

한국산 D램에 대한 미국의 반덤핑조치판정건도 마찬가지다.

통산부는 지난 7월 2일 보도자료를 통해 7월16일로 예정된 미국의 확정
판정에서 우리업계의 철회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WTO에 제소하겠다
고 발표했다.

하지만 외무부는 제소를 반대하고 나섰다.

현대전자와 LG반도체가 D램에 대해 3년연속 미소마진판정을 받긴 했지만
앞으로는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외무부 입장이다.

따라서 WTO제소에 이어 패널이 설치됐을 경우 패널의 심의과정에서 우리
업체의 덤핑사실이 확인되는 최악의 사태가 올 수 있어 보다 신중히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다.

하지만 이같은 외무부측의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통산부는 제소를 강행
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미 자동차협상도 예외는 아니다.

이번 협상에서 통산부측은 값비싼 외국차를 할부로 사서 중고차로 되파는
사기사건을 막기 위해 등록원부에 "할부금융대상"이라는 스탬프를 찍는
방식으로 승용차에 대한 저당권설정을 허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에대해 외무부와 건교부측은 부처간 의견조정과정에서 강력히 불만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이같은 부처간 이기주의와 주도권다툼으로 정부는 급증하는 외국과의
통상마찰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도 힘이 버거운 마당에 정작 안으로 "통상
마찰"을 빚고 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 이건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