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타이어의 백병태(48)이사는 자타가 공인하는 "비둘기파"경영인이다.

이 회사의 경영혁신(BPR)팀과 정보시스템부문을 함께 맡고 있는 그는
"무리수는 부작용을 동반한다.

지속적인 개선은 자연스럽게 개혁으로 이어진다"라는 말을 시간있을
때마다 강조한다.

94년부터 계속돼 온 BPR사업도 이같은 기조아래 추진하고 있다.

그는 BPR추진과정에서 불가피한 인력감축등의 무리수는 가급적 피했다.

급작스런 변화를 싫어하는 개인적인 스타일 탓도 있지만 인력감축이란
최고경영자가 아니면 추진하기 버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대신 새로운 정보시스템을 도입, 생산성을 배가하는 "온건한" 방식을
택했다.

1단계로 지난8월까지 공장과 본사, 연구소등 전국7개 사업장과 41개 지점,
물류센터를 하나의 정보라인으로 엮는 네트워크작업을 완료했다.

실시간 정보교류를 통해 경영및 관리, 생산성을 극대화시킨다는 일반적인
전술이다.

두번째 복안은 자체개발한 전자결재시스템을 이용, 사내 경영진과 임원,
직원들에 관한 개인정보와 언행을 오픈하는 것.

그는 이를 로마 원로원의 토의내용을 글로 써서 일반인에 공개, 개혁을
시작했던 "줄리어스 시저"의 방식이라고 소개하기도.

그는 이같은 방식이 사내구성원들의 인식변화를 유도, 유무형으로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들려줬다.

결국 그는 경영혁신이라는 칼자루를 쥐고 있으면서도 칼날대신 무딘
"칼등"를 쓰고 있는 셈.

그 이유는 "엔지니어 출신의 학구파 경영인"이라는 그의 프로필이 잘
설명한다.

백이사는 76년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금호석유화학에서 엔지니어로 2년간 근무하다 78년 한국타이어에
입사, 줄곧 R&D(연구개발)와 생산시스템개발분야에 몸담아 왔다.

기술연구소와 생산기술본부, 금산신공장등을 거치면서 새로운 기술로
눈에 띄는 "족적"을 남겼다는게 주위사람들의 평.

BPR와 관련된 책도 3권이나 틈틈이 번역해 출간했다.

"BPR에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저항감 없이 직원들이 공동체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첨단 정보시스템을 십분활용해 나가겠다"

CIO와 BPR추진자로서 백이사의 온건주의가 결실을 맺을수 있을지 궁금하다.

<박수진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