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태 <(주)태산 회장>

토지와 관련된 규제는 대단히 복잡하다.

최근 건설교통부에서 조사한 자료만 보더라도 15개 정부 부처가
국토전반과 지역 도시 주택 건축 수자원 교통 등 16개 분야에 걸쳐
모두 99개의 토지이용과 관련된 법률을 운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중 구역을 정해 토지이용을 제한하는 법률이 78개나 되고, 이들 법률에
의해 이용이 제한되는 구역도 무려 1백69종이나 된다.

토지에 대한 규제가 이토록 많은 이유는 물론 투기억제를 위한 것이지만,
중복 규제의 방지나 국토의 효율적인 활용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이들 법령의
통폐합과 함께 불필요한 규제의 과감한 철폐가 요청된다.

철폐가 요청되는 대표적인 규제로 토지거래 허가제도가 있다.

원래 토지거래 허가제도는 70년대 후반 해외건설붐에 따라 국내로
외화유입이 크게 늘어나면서 지가가 급등하자 도입된 제도로 수도권
등 일부지역에서의 지가상승과 토지투기를 억제하기 위해 85년부터
시행되었다.

토지거래 허가구역에서는 토지에 대한 소유권 지상권 전세권 또는
임차권을 이전하거나 설정하는 계약(예약 포함) 체결시에는 사전에
시장 군수 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만 하고, 허가를 받지 않고 체결한
토지거래 계약은 무효로 하고 있다.

문제는 너무도 많은 지역을 토지거래 허가구역으로 지정함으로써
가뜩이나 좁은 국토의 효율적인 활용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이다.

97년 6월말 현재 토지거래 허가구역은 전국토의 35.5%에 달하고, 신고
구역(34.7%)까지 합치면 전국토의 70.2%에 달하는 토지가 허가 또는
신고 구역으로 규제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들 지역에서의 투기발생을 우려하여 지정기간이 만료된 뒤에도
대부분 재지정되고 있는데 그 비율이 무려 97%라고 한다.

부동산의 투기방지를 목적으로 도입된 이 제도를 부동산 실명제 등 각종
투기억제수단이 제도적으로 완비되어 있는 현재까지도 부동산투기가
극심하던 시대와 똑같이 적용할 필요가 있을까.

투기억제라는 명분아래 지나치게 국민의 사유재산권 행사를 규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특히 주택건설사업자의 입장에서 볼때 이 제도는 현실의 부동산
거래관행에도 부합되지 않으면서 부담만 가중시키고 있다.

토지거래는 매매계약이나 예약전에 미리 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구체적인 허가대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허가를 받도록 하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않는 조치이다.

따라서 주택건설사업자들은 토지 매매에 있어 토지거래 허가전에
매매절차를 밟고, 허가 후에 다시 계약날짜를 달리하는 매매계약서를
작성하게 되는 불합리한 관행을 지속하고 있다.

이처럼 2중의 매매절차를 거치다 보면 지가상승 등 주변여건의 변화를
악용한 토지소유자들이 고가매입을 강요하는 사례가 빈번하고, 그 결과
주택건설사업자들의 정상적인 사업추진이 어려워지면서 자금압박으로 인하여
도산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어디 그 뿐인가.

토지소유자와 매매계약후 계약금 중도금은 물론 잔금까지 지불한
상태에서도 명의이전이 불가능하므로 소유권 보전을 위한 "처분금지
가처분신청소송"을 필지별로 해야 하고, 부동산 매매관련 인감의 시효가
6개월이기 때문에 시효기간 만료이전에 재교부를 받아야 하나 기간이
경과했다는 이유로 많은 대가를 요구받거나 심한 경우 해약을 통고받는
경우도 있다.

또한 잔금을 지불한 상태에서도 토지거래허가를 얻지 못하여 은행담보
등 명의이전에 따른 재산권의 행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로 인한
자금압박과 부채비율의 증대로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최근에는 정부도 이같은 문제점을 감안하여 토지거래허가전에 허가받을
것을 조건부로 하는 예약 등은 유효한 계약으로 인정해 주기로 하였다.

이같은 조치는 물론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토지거래 허가제도의 골격을
유지하는 선상에서 미봉적인 개선방안 하나만 제시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목적달성이 불가능하거나, 도입당시의 환경과 너무 달라서 존속의
필요성이 상실되었거나, 다른 대안적인 수단을 통해서도 목적달성이 충분히
가능한 규제는 폐지되어야 한다.

토지거래 허가제도가 입법화되던 70년대 후반이나 80년대 초반과는 달리
지금은 부동산 실명제 등 정부의 강력한 투기억제시책으로 인하여 부동산
시장이 상당히 안정되어 있다.

특히 주택건설사업자들의 경우는 토지취득후 1년 이내에 전매할 경우나
5년 이상 보유할 경우 지방세 양도소득세 등이 무려 5배나 중과세되기
때문에 투기목적으로 토지를 취득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정상적인 토지거래를 위축시키고, 부동산거래의 관행과 부합되지도
않으며, 주택건설사업자에게 과중한 부담을 초래하는 토지거래허가제도는
이제 세부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할 것이 아니라 폐지하는 방향으로
"규제혁파"가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