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종 <한국은행 부총재>

한국은행의 법적 지위및 조직을 혁신적으로 고치겠다는 재정경제원의
법률안에 대하여 국회재무위의 전문위원실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나왔다.

정부의 개정취지는 통화관리에 관한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함과
동시에 이로써 김영삼 대통령의 대선공약을 실행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국회에 제출된 법률안은 기존 한국은행을 없애 버리고
새로이 한국중앙은행이라는 것을 설립하되 은행감독권이 없는 단순한
발권은행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하기는 커녕 한국은행을 아예 없애자는
것이다.

금융시장의 개방과 국제화에 따라 중앙은행의 은행감독및 지원책무는
그 중요성이 날로 더해 가고 있는 국내외 금융환경에 비추어 볼 때 도저히
수긍할 수 없는 이 개정안이 양식있는 전문위원들로부터 외면당한 것은
사필귀정이라 할 것이다.

사실 한국은행의 독립이라는것은 일반국민에게는 얼른 피부에 와닿지
않는 명제이다.

그렇지만 서민들의 가벼워지는 장바구니와 깨지는 내집마련의 꿈에
쌓이는 한숨이 바로 정부의 한국은행에 대한 강압의 결과임을 알게되면
한국은행의 독립성보장에 무관심할 수 있는 국민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는 드물지 않게 거대기업의 부도를 경험하였다.

그때마다 과다한 금융비용의 문제가 논의되었다.

금융비용을 줄이려면 빚을 덜 써야 될 것인데도 그럴 생각은 안하면서
이자만 높다고 하는 그들은 서민들이 1천만원을 모으려면 얼마나 긴 세월을
근검절약해야 되는지, 또 그렇게 모은 원금으로 한달에 얼마의 이자를 받을
수 있는지, 또 얼마의 원금이 있어야 최저 임금수준정도의 이자가 되는지를
계산해 보았는지 궁금하다.

한국은행이 독립성을 보유하게 되면 이런 모순은 점차 지양될 것이다.

앞으로 국회의 표결과정에서 선량들의 건전한 양식이 표출되기를 빌어마지
않는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