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제표는 기업이 하는 일과 재무구조 영업실적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기업의 얼굴이다.

금융기관이나 주식투자자 등 이용자를 위해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공공재"의
성격을 갖고 있다.

한줌의 속임수없이 작성돼야 한다는 믿음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재무제표를 분식할 경우 자금줄이 막히고 주가가 폭락해
심할 경우 문을 닫아야 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아직도 재무제표의 신뢰성이 땅에 떨어져 있다.

분식결산과 부실감사에 대한 소송도 끊이지 않고 있다.

대법원의 청운회계법인 판결을 계기로 회계장부 부실화의 원인과 대응방안을
알아본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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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을 분석하기 위해선 해당기업의 재무제표를 미국기준에 맞춰 다시
작성한다.

기업들이 회계기준을 자의적으로 바꿔 순이익이나 EPS(주당순이익) 등을
믿을수 없기 때문이다"(이남우 동방페레그린이사).

"업계에서 좋지 않은 얘기가 나오는데도 재무제표엔 별다른 문제가 없는
기업의 신용을 평가할 때는 어려움이 많다"(모신용평가회사 평가부장).

"기업제무제표는 물론 신용평가사의 신용등급도 믿지 못해 자체 심사부에서
정밀분석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김윤희 동양종합금융 금융부장).

기업의 얼굴이며 성적표인 재무제표(감사보고서)를 믿지 못하겠다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재무제표를 만드는 기업이 이익을 부풀리기가 일쑤인데다 이를 감시해야 할
공인회계사도 눈감아 주는 예가 비일비재한 탓이다.

대법원에서 배상판결을 받은 청운회계법인의 한국강관(현 신호스틸)처럼
재고자산을 2백18원, 보관어음을 80억원 늘려 18억원 당기순손실을 19억원
순이익으로 바꿔 놓은게 대표적인 예다.

지난 92년 1월23일 증시에 상장된지 3개월만에 부도를 내고 쓰러진 신정제지
도 분식결산의 결과였다.

기업의 입맛에 맞게 회계기준을 바꿀 수 있도록 한 현행 규정도 색칠(분식
결산)을 부추기고 있다.

실제로 올해 감가상각방식이나 환차손처리방법을 바꿔 이익을 늘린 회사는
20개사나 된다.

LG반도체는 연구개발비 상각방법을 바꿔 상반기중 실적을 1백53억원 적자
에서 1백60억원 흑자로 탈바꿈했다.

한전은 환차손처리를 바꿈으로써 반기순이익을 3백16억원에서 1천1백5억원
으로 늘렸다.

게다가 감사보고서를 일년에 두번밖에 제출하지 않아 최근 정보를 입수하기
곤란하다.

관계사가 여러개일때 회사별 거래내역도 공개되지 않는다.

예컨대 A회사의 관계사가 20개일 때 전에는 20개사와의 거래내역이 모두
표시됐으나 지금은 20개회사 전체내역만 두리뭉실하게 표시된다.

영업상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계열사의 회계법인이 다르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회계법인 사이에 정보교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모회사는 "적정의견"이
나오는데 자회사는 "의견거절"이 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분식결산과 부실감사에 대해 법원이 "용인"해온 것도 재무제표 신뢰성을
떨어뜨려온 요인이었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이 있기전까지만 해도 법원은 증권거래법과 외부감사법
에서 정한 손해배상시효(1년)와 "예측할수 없는 것에 대해선 책임을 물을수
없다"는 원칙에 따라 공인회계사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회계법인의 포괄적책임을 인정한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인해 이같은
관행은 뿌리부터 바뀌지 않을수 없게 됐다.

분식결산.부실감사로 손해를 입은 투자자들의 소송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주식시장 개방으로 외국투자자들의 엄격한 자료 제출에 대한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믿지 못할 재무제표를 만드는 회사와 이를 눈감아 주는 회계법인은 설 땅이
없어진다는 얘기다.

<홍찬선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