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환율제 대 변동환율제"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등 동남아 국가들의 동시 다발적인 통화위기를
계기로 환율제도에 대한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개발도상국의 환율제도로는 고정환율제가 바람직하다는 이론과 외환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선 변동환율제가 적합하다는 주장이 맞붙어 때아닌 제도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논점은 동남아국들이 고정 또는 준고정환율제를 고수해 오다 최근 외환
위기에 봉착, 일제히 변동환율제로 정책방향을 수정한 것에 대한 찬반이다.

92년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게리 베커 시카고대 교수는 8일자
비즈니스위크지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정치 경제상황을 감안할때 개도국에선
변동환율제의 장점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게리 베커교수는 선진국보다 정치불안과 관료부패가 심한 개도국에서는
국가의 발권력이 남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런 이유로 통화량 조절이 안되기 때문에 인플레가 심각해지고 외환시장
기반도 흔들리게 된다는 설명이다.

베커교수는 따라서 개도국은 자국통화의 가치를 달러화나 일본 엔화및
독일 마르크화등에 고정시키고 통화량 자체를 엄격하게 외환보유액 증감에
따라 조절하는 고정환율제가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아르헨티나의 경우엔 페소화와 달러를 1대1의 비율로 고정시킨
환율제를 도입한후 인플레를 잡을 수 있었다.

브라질도 고정환율제를 채택해 인플레를 끌어 내리면서 안정적인 경제성장
을 이룩할 수 있었다.

존스 홉킨스대의 스티브 한케교수도 동남아국들이 최근 변동환율제를
도입한 것과 관련해 오히려 환율제도 변경으로 인해 경제가 끝없는 수렁으로
빠지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레만 브라더스의 지역경제전문가인 미론 무시카트는 "변동환율제도 장점이
많지만 동남아국의 경우 이 제도를 도입할 준비가 돼있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반면 변동환율제를 지지하는 쪽은 동남아국의 사례를 들어 무리하게 고정
환율제를 고수하는 바람에 더 큰 화를 입었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외환시장 일선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딜러들 가운데 변동환율제를 옹호
하는 사람들이 많다.

뱅크오브아메리카 홍콩법인의 외환딜러인 에릭 니커슨은 동남아 지역에서
고정환율제 시대가 끝난 것이 현실이라며 "고정환율제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은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국제전략 연구센터의 마리 팡게투 수석연구원은 "변동환율제가
무역수지조정등에 유리하다"며 인도네시아의 경우에는 오히려 고정환율제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점이 드러났다고 덧붙였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은 개도국에 대해선 고정환율제를 권장해 왔으나
최근들어 태국 금융사태에 관련해서는 변동환율제가 더 현실적이라는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

미국 뉴욕연방은행의 이코노미스트인 프레드릭 미시킨 같은 전문가는 환율
논쟁에서 다소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열린 캔자스 시티 연방은행 주최 심포지엄에서 "동남아국이
고정환율제를 일찍 포기하지 않아 금융시장이 더 혼란을 겪었다"고 분석했다.

동시에 이 이코노미스트는 가뜩이나 외채구조가 단기채무 일색인
동남아국들이 변동환율제로 인해 외채부담 압력을 더 크게 받을 수 있다는
불안한 전망을 내렸다.

< 양홍모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