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의료는 시장이 아니다 .. 김창엽 <서울대 의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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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본지 9월11일자 10면에 실린 "의료산업과 시장경제" 제하의
김영용교수 목요시평에 대한 반론이다.
<편집자>
======================================================================
시장경제와 효율, 그리고 경쟁.
아마도 지금 우리사회에서 가장 강한 설득력을 가진 말들일 것이다.
아니 설득의 차원을 넘어 이제는 감히 누구도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할
국가운영의 지표이자 시대정신이 된 듯하다.
이 정도면 단순한 논리차원을 넘어 "권력"을 획득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드디어 시장의 논리는 일반 산업부문을 정복하고 복지와 삶의 질 영역에서
조차 독점적 지위를 누리려 하고 있다.
본 신문의 지난 11일자 목요시평에서 김영용교수가 드러내보인 "의료의
시장경제" 논리는 이러한 시도의 전형적인 예라 할 것이다.
김교수의 주장은 명확하다.
의료산업도 시장논리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비록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시장경제의 순기능이 우리나라 의료문제의
대부분, 혹은 상당부분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암시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기실 이러한 주장 자체는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동안 의료계 안팎에서 벌어졌던 의사인력의 공급과 관련된 논쟁에서
비슷한 논리가 심심찮게 거론된 것이 사실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토론 풍토상 명확한 결론없이 흐지부지 끝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더 이상의 새로운 논리를 담은 것도 아닌 채로 증명되지 않은
주장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아마도 많은 일반 국민들의 심정적 지지가 비슷한 주장이 계속되도록
도와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김교수가 말하는 시장논리가 정확하게 어떤 것을 뜻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전체 문맥으로 보아 의료시장에 대한 새로운 의사 인력의 진입장벽을 없애
거나 줄여야 한다는 것이 논지의 핵심인 것으로 보인다.
김교수는 의료시장의 공급자, 즉 의사수를 늘려서 경쟁을 유도하고 그
결과로 국민이 누릴 수 있는 의료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필자는 여기에서 해묵은 논쟁거리인 적정한 의사 수에 대한 언급을 되풀이
할 생각은 없다.
다만 공급을 늘림으로써 가격은 낮추고 질은 높일 수 있다는 전통적인
시장논리가 의사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논리를 문제삼고자
한다.
시장논리가 의사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논리를 문제삼고자
한다.
당장이라도 경제학원론 교과서를 펴면 완전한 경쟁시장이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대표적인 분야, 그래서 시장실패의 전형
적인 분야가 의료라는 것은 기초적인 지식에 속하는 사항이다.
이런 전제조건이 아니더라도 현실의 의료시장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경쟁
과는 더욱 거리가 멀다.
많은 전문가, 특히 경제학자들은 의사인력의 공급이 늘어나면 경쟁때문에
질적 수준이 낮은 인력은 도태되면서 전체 의료의 질은 올라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유감스럽게도 전세계 어느 곳에서도 의사 수를 늘려 의료의 질을 올릴 수
있었다는 증거도 없다.
김교수는 의사공급을 제한하여 의료의 질을 올렸다는 증거가 없다고
하였지만, 그 역도 마찬가지로 진실이다.
오히려 대부분의 선진국은 의사 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프랑스를
비롯한 7~8개의 OECD 국가는 지난 20년동안 인구1인당 의사 수를 실제로
줄였다.
과연 이들 나라가 충분한 의료의 질을 확보하였기 때문에 의사 수를
줄이려고 노력할까.
물론 아니다.
많은 의사가 시장경제의 논리에 의해 경쟁을 하고 이를 통해 의료의 질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 낭비와 비효율을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 수를 늘린다고 해서 의료의 질이 올라가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우선 의료의 질을 일반인이 판단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질이 낮은 의사를 찾아내서 시장에서 배제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친절이라든가, 의료시설의 편의성이 질의 전부라면 문제는 비교적 간단하다
그러나 의료의 질에서 더 중요한 것은 의학적 질이고, 적어도 아직까지는
일반 소비자가 시장경쟁의 참여자로서 이것을 제대로 판단하고 고르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또한 의사는 어지간한 경쟁에서는 결코 "도태"되지 않는다.
의사는 현대 사회의 모든 직종중에서 직업에 대한 충성도가 가장 강하다.
평생 동안 직업을 거의 바꾸지 않고, 일시적으로 바꾸는 경우에도 최종
직업은 의사로 되돌아온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정보의 우위와 이른바 "공급자 유인수요"에 의하여 대부분의 의사는 자신의
질을 올리지 않고도 생존할 수 있다.
의사를 도태시키는 것이 목적이라면 아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멕시코나 필리핀 같이 단기간에 엄청난 의사를 양성하는 방법이 있다.
멕시코는 이 방법으로 약 30%의 의사를 실업자 혹은 준실업자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방법에 의하여 멕시코 의료의 질이 올라갔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분명히 한국의 의료에는 문제가 있다.
불친절과 높은 문턱, 의료보장이 무색한 과도한 가계부담 등 근본적으로
고쳐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김교수의 주장에서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도 이 점이다.
의료의 목표는 의사나 의료인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의 건강향상이고,
그것의 결정권도 국민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도 백번 마땅하다.
또 의료의 질이라는 측면에서도 파천황적인 발상전환과 비약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의 해결방법은 시장경제의 논리를 강화하는 것도, 의사 수를
늘리는 것도 아니다.
답은 다른 데에 있다.
의료전달체계의 건전화, 양질의 1차진료 의사 확보, 의료의 질향상, 공공
부문의 책임강화 같은 것들이 올바른 처방이다.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불편도 그것이 의사 수라는 데에 투사되어 있을
뿐 양적인 부족이 그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 필자의 확신이다.
이러한 처방을 자세히 설명할 겨를은 없으나 한마디는 하고 마무리를
지어야 하겠다.
적어도 선진국에서 의료는 "상품"이 아니다.
80% 내외의 의료인력과 시설을 민간에 맡겨 놓고 있는 나라는 미국과 일본
정도를 제외하면 없다.
인력 재정 시설 모두에서 국가가 기본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마저 우리 식의 민간의료는 아니다.
한마디로 의사인력뿐 아니라 의료를 "시장"으로 보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의료시장 개방"도 당초 성립할 수 없는 개념이다.
보건의료 복지 교육 등은 전세계적으로 국가가 기본적인 책임을 지는
분야라는 것이 상식이다.
이는 삶의 질이라는 측면 뿐 아니라 국가운영의 일종의 인프라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위 "복지국가의 실패"이후 전세계적으로 의료계혁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90년대를 관통하여 최우선적인 과제가 되어 있다.
이들 국가가 시도하고 있는 개혁에는 비록 내부시장과 계약의 활성화라는
형식이지만 시장경제적 요소를 강화하려는 시도가 들어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많은 식자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그러나 이들 국가가 시도하고 있는 것은 국가의 책임포기나 "의료시장"의
청설이 아니다.
이들의 개혁은 국가가 운영하던 보건의료체계에 좀더 큰 효율과 탄력성을
주기 위한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참고할 만한 또 다른 방향으로
진보라 해야 할 것이다.
전세계에서도 가장 기형적으로 민간과 시장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의 의료가
따를 길과는 태생부터 다르다.
그렇다면 맥락과 내용은 빼고 형식만 따르는 우, 혹은 우상숭배는 범하지
말 일이다.
오히려 새로운 시기에는 새로운 발상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보건의료에서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2일자).
김영용교수 목요시평에 대한 반론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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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와 효율, 그리고 경쟁.
아마도 지금 우리사회에서 가장 강한 설득력을 가진 말들일 것이다.
아니 설득의 차원을 넘어 이제는 감히 누구도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할
국가운영의 지표이자 시대정신이 된 듯하다.
이 정도면 단순한 논리차원을 넘어 "권력"을 획득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드디어 시장의 논리는 일반 산업부문을 정복하고 복지와 삶의 질 영역에서
조차 독점적 지위를 누리려 하고 있다.
본 신문의 지난 11일자 목요시평에서 김영용교수가 드러내보인 "의료의
시장경제" 논리는 이러한 시도의 전형적인 예라 할 것이다.
김교수의 주장은 명확하다.
의료산업도 시장논리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비록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시장경제의 순기능이 우리나라 의료문제의
대부분, 혹은 상당부분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암시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기실 이러한 주장 자체는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동안 의료계 안팎에서 벌어졌던 의사인력의 공급과 관련된 논쟁에서
비슷한 논리가 심심찮게 거론된 것이 사실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토론 풍토상 명확한 결론없이 흐지부지 끝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더 이상의 새로운 논리를 담은 것도 아닌 채로 증명되지 않은
주장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아마도 많은 일반 국민들의 심정적 지지가 비슷한 주장이 계속되도록
도와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김교수가 말하는 시장논리가 정확하게 어떤 것을 뜻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전체 문맥으로 보아 의료시장에 대한 새로운 의사 인력의 진입장벽을 없애
거나 줄여야 한다는 것이 논지의 핵심인 것으로 보인다.
김교수는 의료시장의 공급자, 즉 의사수를 늘려서 경쟁을 유도하고 그
결과로 국민이 누릴 수 있는 의료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필자는 여기에서 해묵은 논쟁거리인 적정한 의사 수에 대한 언급을 되풀이
할 생각은 없다.
다만 공급을 늘림으로써 가격은 낮추고 질은 높일 수 있다는 전통적인
시장논리가 의사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논리를 문제삼고자
한다.
시장논리가 의사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논리를 문제삼고자
한다.
당장이라도 경제학원론 교과서를 펴면 완전한 경쟁시장이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대표적인 분야, 그래서 시장실패의 전형
적인 분야가 의료라는 것은 기초적인 지식에 속하는 사항이다.
이런 전제조건이 아니더라도 현실의 의료시장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경쟁
과는 더욱 거리가 멀다.
많은 전문가, 특히 경제학자들은 의사인력의 공급이 늘어나면 경쟁때문에
질적 수준이 낮은 인력은 도태되면서 전체 의료의 질은 올라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유감스럽게도 전세계 어느 곳에서도 의사 수를 늘려 의료의 질을 올릴 수
있었다는 증거도 없다.
김교수는 의사공급을 제한하여 의료의 질을 올렸다는 증거가 없다고
하였지만, 그 역도 마찬가지로 진실이다.
오히려 대부분의 선진국은 의사 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프랑스를
비롯한 7~8개의 OECD 국가는 지난 20년동안 인구1인당 의사 수를 실제로
줄였다.
과연 이들 나라가 충분한 의료의 질을 확보하였기 때문에 의사 수를
줄이려고 노력할까.
물론 아니다.
많은 의사가 시장경제의 논리에 의해 경쟁을 하고 이를 통해 의료의 질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 낭비와 비효율을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 수를 늘린다고 해서 의료의 질이 올라가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우선 의료의 질을 일반인이 판단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질이 낮은 의사를 찾아내서 시장에서 배제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친절이라든가, 의료시설의 편의성이 질의 전부라면 문제는 비교적 간단하다
그러나 의료의 질에서 더 중요한 것은 의학적 질이고, 적어도 아직까지는
일반 소비자가 시장경쟁의 참여자로서 이것을 제대로 판단하고 고르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또한 의사는 어지간한 경쟁에서는 결코 "도태"되지 않는다.
의사는 현대 사회의 모든 직종중에서 직업에 대한 충성도가 가장 강하다.
평생 동안 직업을 거의 바꾸지 않고, 일시적으로 바꾸는 경우에도 최종
직업은 의사로 되돌아온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정보의 우위와 이른바 "공급자 유인수요"에 의하여 대부분의 의사는 자신의
질을 올리지 않고도 생존할 수 있다.
의사를 도태시키는 것이 목적이라면 아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멕시코나 필리핀 같이 단기간에 엄청난 의사를 양성하는 방법이 있다.
멕시코는 이 방법으로 약 30%의 의사를 실업자 혹은 준실업자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방법에 의하여 멕시코 의료의 질이 올라갔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분명히 한국의 의료에는 문제가 있다.
불친절과 높은 문턱, 의료보장이 무색한 과도한 가계부담 등 근본적으로
고쳐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김교수의 주장에서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도 이 점이다.
의료의 목표는 의사나 의료인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의 건강향상이고,
그것의 결정권도 국민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도 백번 마땅하다.
또 의료의 질이라는 측면에서도 파천황적인 발상전환과 비약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의 해결방법은 시장경제의 논리를 강화하는 것도, 의사 수를
늘리는 것도 아니다.
답은 다른 데에 있다.
의료전달체계의 건전화, 양질의 1차진료 의사 확보, 의료의 질향상, 공공
부문의 책임강화 같은 것들이 올바른 처방이다.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불편도 그것이 의사 수라는 데에 투사되어 있을
뿐 양적인 부족이 그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 필자의 확신이다.
이러한 처방을 자세히 설명할 겨를은 없으나 한마디는 하고 마무리를
지어야 하겠다.
적어도 선진국에서 의료는 "상품"이 아니다.
80% 내외의 의료인력과 시설을 민간에 맡겨 놓고 있는 나라는 미국과 일본
정도를 제외하면 없다.
인력 재정 시설 모두에서 국가가 기본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마저 우리 식의 민간의료는 아니다.
한마디로 의사인력뿐 아니라 의료를 "시장"으로 보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의료시장 개방"도 당초 성립할 수 없는 개념이다.
보건의료 복지 교육 등은 전세계적으로 국가가 기본적인 책임을 지는
분야라는 것이 상식이다.
이는 삶의 질이라는 측면 뿐 아니라 국가운영의 일종의 인프라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위 "복지국가의 실패"이후 전세계적으로 의료계혁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90년대를 관통하여 최우선적인 과제가 되어 있다.
이들 국가가 시도하고 있는 개혁에는 비록 내부시장과 계약의 활성화라는
형식이지만 시장경제적 요소를 강화하려는 시도가 들어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많은 식자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그러나 이들 국가가 시도하고 있는 것은 국가의 책임포기나 "의료시장"의
청설이 아니다.
이들의 개혁은 국가가 운영하던 보건의료체계에 좀더 큰 효율과 탄력성을
주기 위한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참고할 만한 또 다른 방향으로
진보라 해야 할 것이다.
전세계에서도 가장 기형적으로 민간과 시장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의 의료가
따를 길과는 태생부터 다르다.
그렇다면 맥락과 내용은 빼고 형식만 따르는 우, 혹은 우상숭배는 범하지
말 일이다.
오히려 새로운 시기에는 새로운 발상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보건의료에서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