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치의 몸에는 언젠가 관계를 잠깐 가졌던 미국여자 낸시로부터 불치의
에이즈가 옮아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에이즈 테스트를 안받고 있어서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

영어를 배운다고 따라 다니다가 그렇게 됐다.

저녁 아홉시쯤 되었을때 소사장에게서 삐삐가 걸려온다.

백옥자사장을 만난지도 어언 삼일이 흘러 있어서 백영치는 어느정도
기운을 채리고 있었다.

그러나 영치는 왠지 자기의 몸의 컨디션이 전과 같지 않아서 이상하게
생각한다.

"소사장님 안녕하셔요?"

그는 무슨 건수인가 하면서 소사장에게 반갑게 전화를 넣는다.

"재벌의 딸을 이번에는 소개할 것이다.

소개료는 톡톡히 써야되"

"알겠습니다.

저는 삼천만원만 되면 고향걸거에요.

몇시에 갈까요?"

"지금 와. 이 여자도 백사장처럼 실연을 당한 여자다.

멋쟁이고 잘노는 여자야. 단수도 세고 백옥자하고는 달라 백여사는
좀 촌스럽지, 이 여자는 닳고 닳은 여자지만 너 정도의 미모면 합격할 것
같다"

지영웅에게서 밀려난 여자들이 백영치에게 치료를 받는 것은 근석이
탈렌트 뺨치게 미남이어서였다.

흰피부에 푸른 수염이 귀엽게 났고 곱슬머리에 밝고 큰 눈이 아줌마들의
처녀시절의 애인들을 연상시켜서 일품인거다.

아무래도 사내답고 섹시한 매력은 모자란다.

그러나 그런대로 이런 방면으로 역사적인 경험을 가지고 있는
소사장에게는 정말 흠잡을데가 없는 미남자가 바로 백영치다.

오래는 몰라도 임시로 써먹기는 아주 안성맞춤의 실연당한 아줌마들의
의사로서 제격이다.

우선 그는 사근사근하고 부드럽게 아줌마들을 곱게 다룬다.

살살 앵기면서 입을 맞추고 상처를 어루만져서 마음의 병을 낫게 해준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 그는 너무나 늙어 버렸다.

아무도 지금 영치를 스무살로는 보지 않는다.

그는 기생노릇 일년에 아주 폭삭 못쓰게 늙어버렸지만 아직은 그 본래의
미모가 아주 삭지는 않아서 당분간은 써먹을만한 귀여운 놈이다.

소사장은 누드쇼가 열리고 있는 구석방에서 영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일번과 삼번의 번호를 단 애들 둘이만이 춤을 춘다.

아줌마들은 그 아이들의 번호표를 보고 마음에 들면 카운터에 돈을 내고
이층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얼굴이 붉콰하게 취해버린 권옥경은 자꾸 짜증을 낸다.

"소사장 왜 모두 저렇게 못냄이만 나와요.

좀 어디가서 뉴훼이스를 구해와요.

못냄이 고물들만 데리고 있으니 이집도 한물갔어"

"조금만 기다려요.

곧 백조같은 놈이 올터이니 키크고 탈렌트 뺨치는 애야. 한번 보기만하고
죽어봐유"

약간 취한 소사장도 권옥경에게 농을 한다.

그녀가 전처럼 소개비를 잘내지 않으면서 자꾸 트집만 잡아서였다.

"지코치 반만한 애라도 오면 고맙겠다"

"지코치 같은 물개는 당분간 못찾아. 나에게 좀더 복채를 놔봐요.

혹시 내가 귀신이라도 물어올지 몰라. 히히히"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