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000년대의 민주정치, 사이버 아고라(Agora)로 부터"

그리스 아테네 직접민주정치의 요람 아고라.

시민들이 모여 소리높여 자신의 주장을 부르짖던 민주정치의 광장.

역사학자들은 이 아고라를 "선사이래 가장 이상적인 정치문화를 꽃피웠던
곳"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이제 아고라 광장에 토론객은 보이지 않는다.

무너진 문명의 잔해사이로 옛 영화의 흔적을 감상하려는 관광객의
발길만이 오고갈 뿐이다.

그사이 천년이 훌쩍 지났다.

직접민주정치은 이제 몇몇 국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민주국가들에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 되었다.

그러나 그 직접민주정치의 불꽃이 새로운 공간에서 피어오르고 있다.

시공을 초월한 오픈 스페이스,컴퓨터 네트워크상에서 "사이버 민주주의"
라는 이름으로 재현되고 있다.

전세계에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는 이 네트워크망엔 국경도 인종도 문화도
지위고하도 밤낮도 없다.

누구나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다.

이점에 착안, 일부 젊은 네티즌들은 벌써부터 컴퓨터 네트워크상에서
21세기의 새로운 직접민주주의 정치를 숨가쁘게 실험하고 있다.

(주)바른정보의 김형준(34)사장.

그는 93년 국내 "01410"통신망상에 새로운 아고라 광장을 건설했다.

"참세상".

이 곳에는 현재 1만여명의 개인회원과 시민단체가 모여 새로운 민주주의를
꾸려가고 있다.

정치뿐아니라 사회 문화적인 문제들도 이곳에서는 심도있게 토론된다.

토론을 통해 자연스럽게 여론이 형성된다.

김사장은 이 사이버 스페이스를 통해 "소포클레스시대의 평화"를
재현하겠다는 꿈이 있다.

"정보연대SING"의 오병일(26)대표.

그도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시민민주주의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젊은이.

그는 40여명의 회원들과 함께 인터넷 전자우편을 이용해 국내외 시민들과
사회적인 이슈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여성정치연구소의 김은주(31)연구원은 사이버 여성정치시대의 주창자다.

그녀는 최근 네트워크상에 여성 정당을 하나 결성했다.

이름은 사이티(CyTy).

사이버 파티(가상정당)의 약어다.

당사는 www.feminet.or.kr에 마련했다.

창당한지 1개월만에 수천명의 젊은 여성당원을 확보했다.

최근 이슈는 역시 대선문제.얼마남지 않은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에
대한 경력사항을 체크하거나 실속있는 정책등에 대한 토의가 활발하다.

가상대선투표를 통해 여성정책에 성의있는 후보를 가려낼 계획도 있다.

사이티가 다소 실험적인 성격이 강하다면 제법 정책정당으로서의 모습을
갖춘 사이버 정당도 등장했다.

국회 전자민주주의연구회에서 운영중인 사이버파티 "네트워크21"
(www.cyberparty.ik.co.kr)이 그것.

정당을 운영중인 원성묵씨(33)는 "시민들이 내놓은 좋은 정책을 국회에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현역 국회의원과의 간담회, 정책 청문회뿐 아니라 젊은 유권자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20+21 젊은나라"등이 눈에 띈다.

앞으로는 가상대선도 실시할 예정이란다.

다음 천년의 정치문화는 분명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

사이버 문명이 사회곳곳에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아 나갈 것이다.

그러나 사이버 민주주의정치가 다음 천년의 정치문화로 완전히 자리잡을
것인지는 "아직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사이버 스페이스의 힘이 얼마나 막대해 질지는
이들 젊은 사이버 정치일꾼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 박수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