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말 한.중 수교 5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중국 방문기간중 진로그룹의
전격적인 화의신청 소식에 접했던 강경식 부총리겸 재정경제원 장관이 이번
에는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 연차총회 참석중 기아그룹의 화의 신청소식을
듣게 되자 심기가 매우 불편한듯.

강부총리는 22일 오전 한국경제설명회에 이어 수행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은 심기를 노출하면서 기아그룹에 대한 불쾌감의 수위를 한껏 높였다.

강부총리는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으로 정부가 부실기업을 도울 방법이
없다던 종전의 입장에서 한걸음 전진, 어려운 기업마다 지원해준다면 누가
자구노력을 펼치겠는가라고 반문.

이같은 발언은 가능한 기아자동차만은 살리겠다던 기존 재경원 관계자들의
설명과는 상당부분 벗어난 것이다.

강부총리는 한술 더 떠 현재 정부는 기아그룹과 채권금융기관간의 원만한
사태해결을 위한 절충작업을 벌이지 않고 있으며 타협을 모색할 방법도
없다고 강조했다.

진로그룹의 화의신청으로 강부총리의 분신이라 할 부도유예협약 무용론이
제기됐었는데 또다시 기아그룹마저 화의신청을 하자 이같은 무용론이 더욱
고개를 들지않을까 우려되고 있는 중.

<>.기아의 화의신청에 대해 재정경제원 관계자들은 "배신감을 느낀다"
"대선 직전까지 시간을 끌기 위해 제도를 악용한 것"이라며 강한 어조로
비난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기아스스로가 자력갱생을 포기한 만큼 정부가 기아자동차
를 법정관리로 끌고 갈 경우에 생길수 있는 비판이 기아에 집중되는 효과도
있으리라는 분석도 대두.

윤증현 금융정책실장은 "지난번 청와대회의때 기아자동차만은 법원에 가지
않고 살리기로 얘기를 모았던 것인데 뒤통수를 맞은 셈"이라며 "화의얘기는
오늘 처음 들었다"고 말했다.

윤실장은 "화의는 중소기업에 적합한 제도인데 대기업의 경우 모든 채권기관
동의를 받기가 어렵다"며 "화의가 기아사태를 해결할수 있는 방안인지는
두고봐야 한다"고 설명.

다른 관계자는 "아시아자동차나 기아특수강은 한달에도 몇천억원씩 자금이
모자라는데 화의가 받아들여지기까지 누가 자금을 더 대겠느냐"며 "하청
협력업체는 내팽개치고 기아와 경영진만 살겠다는 것으로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주말에 기아의 화의신청 기미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기아자동차를 살리는데는 동의하지만 전체를 살리고 경영권을 고수하기는
어려울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기아특수강의 경우 4천억원의 채권을 갖고 있는 산업은행의 동의여부가
중요한데 3사 공동경영 전망도 불투명하다"며 "아시아자동차나 기아특수강은
3자인수가 안되면 법정관리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정부가 가장 만만할 시점인 대선직전까지 끌고 가겠다는
심사"라며 "제도를 철저히 악용하는 것으로 밖에 볼수 없다"고 비난.

그러나 일부에서는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겠지만 어차피 자력갱생이 쉽지
않았던 만큼 정부와 채권단의 판단을 홀가분하게 해주는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풀이.

한편 김인호 경제수석 강만수 재경원차관 윤증현 재경원 금융정책실장 등
정부관계자들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 모여 기아의 화의신청에 따른 향후대책을
논의했다.

<>.통상산업부는 기아그룹의 화의신청을 2개월정도 끌어온 기아사태의
최종 해법이라기보다는 "새로운 변수"로 받아들이는 분위기.

통산부 추준석 차관보는 "공식적인 코멘트는 아끼고 싶다"면서도 "이번주가
고비다. 협상에서는 마지막 5분이 중요하다"라고 밝혀 기아의 화의신청
이후에도 다양한 가능성이 전개될수 있음을 암시.

추차관보는 "기아그룹이 화의신청을 낸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정부가
기아측과 사전 협의를 하거나 동의를 한 사실은 없다"고 설명.

통산부는 지난주만해도 "기아가 자구노력 방안을 내놓고 채권단에 도와달라
고 할 것"이라고 강조했으나 기아그룹이 전격적으로 화의신청을 내자 엉뚱한
해결방향으로 흐르고 있다고 여기는 분위기.

특히 통산부는 그동안 기아그룹측에 채권단을 설득할 있는 자구노력방안
마련을 주문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어서 기아의 진의파악에도 분주.

통산부 관계자는 "통산부는 화의신청이라는 부실기업 정리방안에 익숙치
않고 법원이 화의결정을 받아들이기 까지는 2~3개월이 걸린다"고 밝혀 다양한
방안을 강구할 것임을 시사.

통산부는 이와함께 기아의 화의신청이 기아협력업체에게 미칠 영향을 분석
하는 등 분주한 모습.


<>.기아그룹의 기습적인 화의신청 소식이 알려지자 채권상환유예방식을
검토해온 채권은행들은 "허를 찔렸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동의여부를
결정하느라 분주한 모습.

기아의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은 이날 오전 8시 기아로부터 화의신청방침을
통보받은 후에야 어떻게 대처할지를 두고 긴급히 회의를 열기도.

지난 22일 새벽 2시까지 실무작업을 벌인 직원들은 그때까지 기아로부터
화의에 대한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고 설명.

홍콩에서 열리는 IMF(국제통화기금) 총회참석을 긴급히 취소한 류시열
제일은행장도 21일 오후까지 "채권유예방식의 기아자동차 정상화가 순조롭게
추진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혀 화의신청에 대한 낌새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 시중은행장은 "지난 20일 열린 채권은행장회의에서 제3금융기관의
채권행사유예가 여의치 않으면 화의를 검토해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밝혀 화의신청이 기아해결의 한 방법으로 검토된건 확실.

제일 조흥 서울 등 기아 채권은행들은 이날 긴급히 열린 임원회의에서
기아자동차만을 조건부로 정상화시키고 나머지 계열사는 정리한다는 원칙만
지켜진다면 화의에 동의를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쪽으로 의견을 정리.

제일은행 윤규신 전무는 "기아가 3금융권으로부터 1백% 채권유예 동의서를
받아낼 자신이 없으니까 화의신청을 낸 것으로 본다"며 "기아자동차를 파산
시킬 수는 없으므로 되도록 화의를 해주는 방향으로 검토해야 하지 않는가"
라고 말했다.

<>.종합금융업계는 기아그룹의 화의신청에 놀라움과 불만을 감추지 못하면서
도 "현실적으로 화의제도만이 기아정상화를 위한 길"이라며 대체적으로 동의
할수 밖에 없지 않느냐는 분위기.

신한종금의 한근환 사장은 "기아자동차의 타계열사에 대한 지급보증채무
이행과 리스 등 제3금융권의 움직임이 기아정상화를 결정 짓는 변수"라며
"법정관리를 제외하고는 화의신청이 현실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 지을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종금협회 관계자도 "종금사들이 전반적으로 화의에 동의할 것으로 보이며
다만 대출금상환을 위한 금리조건을 놓고 이견이 있을수 있다"고 전망.

일부 종금사는 기아그룹의 전격적인 화의신청에 불만을 터뜨리기도.

한 종금사의 심사담당임원은 "제3자 인수로 매듭이 지어질 것처럼 보였던
기아사태가 더욱 꼬이게 됐다"며 기아그룹의 화의신청에 강한 불만감을 표시.

그는 "화의가 법정관리보다 낫긴 하지만 대출금 상환조건이 열악해질 것이
확실하다"며 제3자 인수가 성사되지 못한데 대해 아쉬움을 표명하고 "대출금
상환 금리조건뿐 아니라 경영진 퇴진과 노조감원 동의서도 화의동의를 결정
하는데 참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아정상화를 위한 최대변수로 떠오른 리스 할부금융 파이낸스 등
제3금융권은 기아그룹이 내걸 화의조건과 채권은행단의 결정을 보아 가면서
화의동의 여부를 결정 하겠다는 수동적인 입장을 표명.

특히 기아그룹에 6천여억원의 여신이 있는 리스업계는 유달리 화의조건에
민감한 모습.

한국개발리스의 여신담당임원은 "기아그룹에 나간 리스는 업계간 과당경쟁
으로 인해 모두 노마진으로 나간 것"이라며 "기아그룹이 리스료를 줄이거나
제때 내지 않는다는 화의조건을 내건다면 역마진 발생이 불가피해져 계약
해지를 통해 설비를 회수해 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