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것같습니까"

최근 각종 공사석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기자에게 던지는 공통된 질문이다.

이 질문에 연이어 나오는 말은 도대체 누구를 뽑아야 좋겠는가 하는
것이다.

대통령선거를 한두번 치른 것도 아니고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등을
뽑는 수많은 선거가 있었지만 이번처럼 질문을 많이 받기는 처음이다.

그만큼 후보들간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어서일까.

여론조사에 나타난 지지율로는 우세한 후보가 있기는 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도 확실하게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만큼 신뢰감을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우선 집권 여당의 후보를 보자.

집권당 대표라는 프리미엄을 업고 단시일내에 50%가 넘는 지지를 얻어내며
후보가 됐지만 두 아들의 병역문제라는 악재를 만나 단숨에 지지율이 20%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 대목에서 이 대표의 측근들이 보여준 카드는 그야말로 최악이다.

지지율제고를 최우선과제로 삼은 이대표 캠프가 내세운 것은 대통합의
정치였다.

말은 그럴듯했지만 사실은 정권을 재창출하기는 해야겠는데 현실이 그러
하지 못하니 어떤 수단이라도 써보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정략적인 판단을 앞세워 내세웠던 내각제개헌 등은 이 대표 자신이 나서
자신의 본뜻과는 다르다고 해명할 수 밖에 없었다.

지지율 2위를 고수하고 있는 이인제 전 경기지사는 어떤가.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을 한몸에 받고 경선과정에서 거물로 떠오른 이
전지사는 "과학적인 데이터"를 배경으로 "국민의 부름"을 받았다며 공당의
경선결과에 불복하고 대선후보로 나섰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그의 행위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찬과 반이 반반정도다.

반대하는 사람이 모두 그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전체지지율을
20%로 볼때 경선불복을 지지하는 사람중에서 40%만이 그를 대통령후보로
지지한다는 얘기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내세운 3김시대의 청산과 세대교체가 아무런 실체를 담고 있지
못해서는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혹시 이 전지사는 내가 아니면 진정으로 21세기를 이끌어갈 지도자는
없다는 독단적인 사고의 틀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싶다.

부동의 지지율 1위를 보이고 있는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를 보자.

지난 대선에서 패배한 후 정계은퇴선언을 하고 영국으로 떠난 김총재의
모습에 필자는 사실 감동했었다.

이제 우리의 정치사에도 독재정권의 부정선거 시비를 떠나 깨끗한 패배를
인정하는 전통이 세워질 수 있겠다는 전망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총재 역시 단 한번의 사과로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또 다시
정계에 복귀했다.

한 무리의 가신그룹을 이끌고 분당을 통해 새로운 정당을 만든 김총재는
이제 끝없는 보수화의 길을 걷고 있는 느낌이다.

한계라고 여겨져온 일정선의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무차별적인 외부
인사 영입작업을 벌이는가 하면 내각제를 매개로 자민련과의 후보단일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김총재의 지론이 대통령제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제와서 내각제를
받아들이겠다는 얘기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통령자리에 한번 앉아보겠다는 욕심의 발로
아닐까.

지지율 최하위를 다투고 있는 김종필 자민련총재와 조순 민주당총재의
경우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김총재가 노리고 있는 것은 캐스팅보트의 역할이고 내각제를 위해서라면
어떤 정파와도 연대하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조 총재는 대선전에 뛰어든지 얼마 되지않아 판단의 근거를 그다지 제공
하지는 않았지만 민주당을 장악하는데 보여준 지도력만으로는 아직 부족한
감을 준다.

대통령선거는 얼마 남지 않았는데 국민이 선택해야할 대상의 면모는
기자가 보기에 이런 정도다.

저마다 구국의 결단임을 내세우며 국민의 표를 원하고 있지만 사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오직 목표는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그 다음에 어떻게 이나라를 이끌어가고 국민을 위해 일할 것인지 정치
지도자로서의 비전이 명확하지가 않다.

국민은 그러나 이들중에서 대통령을 뽑을 수 밖에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