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초 한보가 쓰러지면서 촉발된 대기업들의 연쇄부도는 정부와 기업 금융
기관 등 온 나라경제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들의 부도사태는 갈수록 난마처럼 얽혀가면서 해결의 실마리
조차 찾기 힘든 지경으로 빠져들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산하 한국경제연구센터는 24일 각계 전문가들을 초청,
연쇄부도 위기의 경제를 진단하고 그 대응책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가졌다.

"연쇄 부도위기의 경제, 그 진단과 처방"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토론회는
정순원 현대경제사회연구원 상무이사의 주제발표에 이어 박진근 연세대 교수
의 사회로 김진표 재정경제원 은행보험심의관, 변도은 한국경제신문 주필,
정기영 삼성금융연구소소장이 토론을 벌이는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토론내용을 정리한다.

< 정리=노혜령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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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표국장 =금년들어 잇단 대기업 부도로 한국경제에 대한 대외신용도
가 떨어지고 일부에서는 외환위기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물가 국제수지 등 기본적인 거시경제지표가 호전되고 있고
환율도 시장수급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조정돼 왔기 때문에 동남아와 같은
금융불안사태는 없을 것이다.

현재 겪고 있는 경제위기의 근본 원인은 지난 고도성장기에 이뤄진
무분별한 투자에 따른 재무구조 악화와 경영비효율성에 있다.

물론 실물부문의 불안에 대해 완충역할을 해야 할 금융기관과 정부의 대처
방식에 대한 비판도 있다.

그러나 정부는 대기업 연쇄부도의 파급효과를 최소화할 목적으로 부도방지
협약을 시행, 부도기업정리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본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체제하에서는 정부의 시장개입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장기적인 경제체질 강화가 중요하다.

특히 노동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되도록 하는 제도적 틀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

불황이라고 하면서도 임금은 계속 오르고 있다.

지난 87~95년사이 한국의 실질임금상승률은 9.9%인데 반해 미국은 마이너스
1%, 일본은 1.4%였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한국의 생산성 증가율은 임금증가율에 비해 5%나 낮다는
점이다.

따라서 기업의 고용에 융통성을 줌으로써 경직된 노동시장 구조를 풀어야
한다.

<> 변도은 주필 =실물경제지표가 양호하기 때문에 경제위기가 아니라는
주장에는 동조할 수 없다.

제2,3 금융권의 막대한 부실채권, 기아사태 해결책 부재 등을 감안하면
오히려 경제가 단순한 금융경색 단계를 넘어 금융위기, 나아가 복합불황의
요인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일부에서는 수출이 늘고 수입이 줄어드는 현상을 청신호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채산성이 거의없는 수출이 늘어본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무역수지 무역외수지가 모두 구조적인 적자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외환
보유고는 계속 줄고 있다.

따라서 외환위기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경제위기의 원인은 구조적 불안요인에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에대한 처방이 없다는 것이다.

"경제성장 6%"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인위적인 부양책을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은 정부에 대한 신뢰회복이 가장 시급한 때다.

특히 대기업 정책에 대한 확고한 정책방향을 세워야 한다.

대기업에 대한 국민들의 막연한 반감을 불식시키고 기업을 경영하는데
어려움이 없는 여건을 조성하는게 중요하다.

<> 정기영 소장 =현재는 금융개혁과 금융개방으로 금융부문간 연계성이
강하게 형성돼 있다.

주식가격의 폭락은 주식시장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환율급등 및 자금경색에
그 원인이 있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그결과 금융시장의 한 부문에 악재가 발생할 경우 이를 조기차단하지
않으면 연쇄적으로 다른 분야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금융부문의 연계성을 무시한 채 외국인 투자한도만 늘리는 식의 부양책은
주식시장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외환시장의 환율급등은 심리적인 측면이 강하다.

87년을 기준으로 할때 97년상반기의 실질실효환율은 9백원5전임에도
불구하고 9백10원, 9백15원, 심지어 1천원까지 환율이 오르리라는 예상이
나오는 것은 환율상승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잘못된 기대에 따른 가격 왜곡현상은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이것이 주식시장에 대한 해결책이기도 하다.

<> 박진근 교수 =과거 고도성장기에 맞춰진 외형위주의 성장 등 도처에
산재한 거품을 걷어내는 일이 시급하다.

최근의 급격한 환율변동은 어찌보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자본시장 개방이후의 환율정책이 그 이전과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국내 금리격차만큼 환율절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면 외화가 빠져나가는
것은 당연하다.

개방시대에 맞는 환율정책 수립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엔고에 편승한 고성장시대는 갔다.

정부는 신뢰성있는 정책을, 기업은 기술발전을, 국민은 근검절약을
실천하는 길 밖에는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