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이나 공장을 새로 인수한 경우 원소유주가 납부하지 않은 전기요금과
수도요금에 대한 납부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경기도 인천에 사는 전모씨는 지난 90년 10월 정모씨가 소유하던 공장을
법원경매를 통해 낙찰받았다.

전씨는 그러나 소유권 이전등기까지 마치고 공장가동을 위한 수리공사를
시작하려다 뜻밖의 난관에 부딪혔다.

원소유주인 정씨가 전기요금 2천6백만원을 내지 않아 전기공급이 중단된
상태였던 것.

게다가 수도요금 2백50만원도 내지 않아 수도 역시 끊긴 상태였다.

전씨는 체납된 전기요금과 수도요금을 일단 납부해 공장가동을 재개한뒤
한국전력과 경기도 부천시를 상대로 납부한 요금을 돌려달라며 부당이득금
반환청구소송을 냈다.

전씨는 한전과 부천시가 사건 공장에 대한 경매가 이뤄질 당시 전기요금과
수도요금이 체납된 사실을 알리지도 않고 건물인수자에게 요금을 일방적으로
부담토록 한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한전측이 독점적인 전기공급자라는 지위를 이용해 단전과 단수라는 방법을
통해 미납사실을 알지못한 자신에게 대금을 부담토록 한 것은 우월적 지위를
남용한 불공정행위라는 것.

이에 대해 한전측은 한전의 전력공급 규정에는 새로운 건물인수자가
원소유자의 모든 권리나 의무를 승계토록 돼있는 만큼 전씨에게 체납전기
요금에 대한 납부의무가 있다고 반박했다.

이 사건은 양측이 일진일퇴의 공방을 거듭하며 대법원까지 올라간 끝에
전씨의 승리로 끝을 맺었다.

대법원이 "전기사업법이 정한 공급규정에 따라 건물인수자인 전씨가 체납
전기요금을 납부한 것은 당연하다"고 판단한 원심을 깸으로써 전씨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한전의 공급규정은 어디까지나 공사의 내부업무처리
지침을 정한 것에 불과할뿐 일반적 구속력을 갖는 법규로서의 효력은 없다"
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인수자가 원소유자가 체납한 전기요금을 부담할 것인지
여부는 한전이 원소유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채무를 물려받느냐의 문제이지
전기공급과 직접 관련된 사항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전기요금 미납자의 건물 소유권을 넘겨받았다는 것과 전기및 수도공급조건
과는 별개이며 따라서 전씨가 미납대금을 대신 부담하는데 동의하지 않은
상황에서 전기를 끊은 한전측의 조치는 위법하다는 것이 대법원이 내린
결론이었다.

결국 경매이전에 발생한 채무에 대해 명확한 합의나 통보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인수자에게 일방적으로 채무부담을 강요한 것은 민법이 보장하고
있는 신의성실과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 법원의 최종판단이었다.

<이심기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