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들이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해고공포.인원감축에 따른 업무량 증가, 자사제품 판촉할당량 채우기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판촉캠페인은 회사원들의 허리를 휘게 만들고 있다.

지난 25일 서울 연세대앞 식당 "보은집".

대학동문 선.후배들이 모처럼 만나 술자리를 갖고 있었다.

술잔이 2~3잔쯤 돌았을때 S사에 다니는 김모씨(30)는 가방을 열더니 자사
제품인 PCS(개인휴대통신) 가입신청서를 꺼냈다.

"할당량을 채워야하니까 작성만 해주고 사지 않으면 돼".

동문들이 쓴웃음을 지으며 가입신청서를 작성해주자 답례품으로 CD까지
줬다.

한 선배는 "아예 캠페인하러 작정하고 나왔구나"라고 핀잔을 주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S카드회사에 다니는 오모씨(29)가 신용카드 가입서를
꺼내 돌리는 웃지 못할 진풍경이 벌어졌다.

불황은 이처럼 직장인들에게 "캠페인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불황타개책으로 기업들이 연중 판촉캠페인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신규시장쟁탈전이 치열한 PCS사들의 예약가입자 확보 캠페인은 지나칠
정도다.

심지어 직원들에게 "일을 안해도 좋으니까 밖에 나가 예약자를 확보하라"는
주문까지 하고 있다.

A증권사에 근무하는 이동진씨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예전에 투신사만 판매하던 수익증권을 증권사도 취급할 수 있게 되면서
할당량이 내려왔다.

직원은 3천만원, 대리 4천만원, 과장 5천만원, 부장 6천만원어치를 유치
하라는 "특명"이었다.

영업점은 본사직원의 2배를 끌어와야 했다.

대다수 직원들은 수익률도 낮고 거래도 불편한 공사채형수익증권과 위험이
따르는 주식형수익증권의 경우 고객이 없자 자신들이 은행에서 돈을 대출받아
캠페인 목표액수를 채우고 있다.

일종의 "자살골"이다.

이외에 RP(환매조건부채권), 주식약정고 등 캠페인은 1년내내 계속된다.

은행 보험사 종금사 등 금융기관도 마찬가지다.

손해보험사에서만 팔 수 있던 상해보험을 생명보험사들도 취급할 수 있게
되면서 삼성, 교보, 대한 등 빅3 생보사들은 일제히 "교통재해보험"을 만들어
직원들에게 캠페인을 시키고 있다.

또 손보사들은 자동차보험의 수익성이 좋아지자 경쟁회사 고객을 뺏어오면
특별수당까지 지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부실여신 급증으로 최대 위기를 맞이한 은행도 MMDA(시장금리부 수시입출금
식예금) 등 신상품을 개발해 캠페인에 열을 올리고 있다.

캠페인 할당액을 하청업체들에게 떠넘기는 경우도 있다.

PCS사중에는 인터넷 전용회선을 늘리기 위해 하청업체들에게 이를 깔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

이에 따라 직원들이 2~3명에 불과한 영세하청업체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인터넷은 커녕 PC도 제대로 모르는데 한달에 60만~70만원이 드는 전용
회선을 깔아야 하기 때문이다.

"약한자여! 그대의 이름은 회사원"

회사원들은 이제 이런 말을 곱씹으면서 살아가야만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 한은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