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윤배 숭실대 총장은 요즘 내달 10일로 맞는 개교 1백주년 기념행사
준비로 눈코뜰새 없이 바쁜 가운데에도 가슴아파하는 일이 하나 있다.

그 자신이 자유민주주의의 기초가 된다고 믿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쓸러져
가고 있는 경제현실 때문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들을 살릴 뚜렷한 묘책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중소기업에 대한 관심은 남다르다.

그는 행정학을 전공했으면서도 ''중소기업 전문가''로 불릴 정도로 말문만
열면 중소기업 육성론을 주창한다.

저서 ''복지국가와 중소기업'' ''사회복지의 이론과 과제'' 등에는 중소기업에
대한 그의 심오한 철학이 담겨 있다.

지난 83년에는 숭실대학에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중소기업대학원을 설립,
초대원장을 지냈다.

그런 그를 총장실에서 만나 중소기업 문제 등에 대해 얘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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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난 사람 = 이창호 < 산업2부 기자 > ]

-개교 1백주년 기념행사에서는 어떤 것들을 보여줄 계획입니까.

"이번에 1백주년을 맞아 여러 기념사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1백년사 편찬은 물론 이 학교 출신인 조만식선생을 추모하기 위한 세미나도
계획하고 있고 아시아지역 중소기업대표들을 초청, 회의도 갖고 아시아지역
기독교대학 총장들을 초청해 이들 대학이 개화와 사회발전 등에 미친 영향
등을 비교 조명할 계획입니다"

-행정학을 전공하셨는데 어떻게 해서 중소기업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궁금
하군요.

"저의 집안이 원래 기업가 집안입니다.

부모님과 형제들이 남한으로 넘어온후는 물론 이북에 살 때도 함흥에서
포목상 문방구 고무공장 원양어업 등을 했지요.

또 약자를 도와야 한다는 종교적 신념도 한 몫 했다고 볼수 있습니다.

병약자 장애인 노인 등을 도우려면 경제적 여유가 필요하죠.

부익부 빈익빈현상 등 사회불균형과 갈등을 해소하는 데도 중소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에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국가 아닙니까.

자유란 자유시장, 즉 자유기업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누구나 시장에 뛰어들수 있는 자유가 있어야 자유 평등사상이 확립됩니다.

저는 자유민주주의의 기초는 바로 중소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서제목에도 나와 있는데 복지국가 사회복지와 중소기업간엔 어떤 연결
고리가 있는지요.

"복지정책의 선진국인 서유럽의 경우 정부돈으로 국민의 최저생활을 보장해
주다 보니 재정난에 봉착하게 됐습니다.

따라서 요즘엔 국민 각자가 창업해서 돈벌이를 하도록 하는게 이들 나라들
의 복지정책의 핵심입니다.

무상지원만으로는 서유럽과 같은 전철을 밟게 됩니다.

우리도 정부가 국민으로 하여금 직업훈련이나 자영업 등을 스스로 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쪽으로 정책을 바꿔 나가야 하고, 그러다 보면
사람들이 중소기업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될 겁니다"

-요즘 중소기업들이 그 어느때보다 어려운데 그 원인을 어떻게 진단
하십니까.

"원인은 다양합니다.

우선 산업이나 기업발전의 원동력은 기술력인데 우리는 이같은 기술력은
물론 우수한 인력도 많이 부족하고 내놓을 만한 좋은 제품들도 빈약합니다.

세계화나 국제화에도 뒤처져 있고 국가경쟁력 기반도 취약하지요.

예를들어 중국을 대상으로 사업하는 사람은 많지만 이중 중국어를 할줄
아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변화하는 세계에 대한 적응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중소기업 육성대상 조정론을 주장하셨는데 그 배경은 어떤 겁니까.

"기업난립으로 인한 공급과잉과 이로 인한 공멸을 막기 위한 것이 그 요체
입니다.

미국의 조지아주를 예로들면 남북전쟁의 폐허에서 지금의 번영을 이뤄낸게
바로 조지아공대입니다.

여기서는 업종별로 조지아주에서 꼭 필요한 수요량을 산출, 공장건설을
제한하고 있어 공급과잉을 사전에 차단해 왔습니다.

금융기관도 거기에 맞춰 대출해 줍니다.

이게 바로 미국이 같은 주 안에서도 전 산업이 고루 발전하고 모든 산업
분야에서 세계 우위를 갖는 원동력입니다.

뭐가 좀 잘된다 싶으면 너나없이 우루루 몰려들곤 하는 우리 기업인들이
많이 배워야 할 점입니다"

-우리 중소기업정책의 문제점을 든다면.

"산업이나 시장별로 조정을 못한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또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역할분담도 안돼 있어요.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문제를 예로 들어보면 단체수의계약이 유일한 수단
이다시피 한데 갈수록 여건이 안좋지만 금액이 큰 것은 작게 쪼개서 시장을
보호한다든지 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입니다.

협동화단지도 현금을 받고 팔기 때문에 땅사고 나면 공장 못돌리고 부도
나는 기업도 있습니다.

따라서 협동화단지는 임대로 돌려야 합니다"

-이번 학기 학부에 "정주영 창업론"이 개설돼 직접 강의도 하셨다는데
기업인으로서의 정주영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정회장만큼 창업에 모범적인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밑바닥부터 배워 왔고 다른 사람이 안된다고 하는 일을 해낸 기업가정신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정부가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을 폈을때 자동차사업을 하면 되겠다 싶어
포드 GM 등이 말리는데도 현대자동차를 시작해서 성공했고, 60년대초엔
선진국들이 우리나라는 조선능력이 없다고 부정적일때 앞장서 유조선을
만들었죠.

중동 베트남의 건설업진출도 마찬가집니다"

-총장님께서도 기업을 해보신 적이 있는지요.

"부산 피란시절인 고등학교 1학년때 군용플래시 수리를 해서 돈 좀 벌었죠.

당시엔 폭격맞아 논두렁에 넘어진 트럭들이 많았는데 엔진을 분리해서
팔면 돈벌이가 되겠다 싶어 해볼까도 생각했는데, 어린 나이에 하기엔 너무
위험이 많아 포기했습니다.

지금도 친구들은 그 사업을 했으면 떼돈을 벌었을 거라고 얘기들하죠"

-중소기업 대학원을 설립한지 14년정도 지났는데 성과는 어떻게 평가
하시나요.

"아주 좋습니다.

지금까지 석사 3백40명 최고경영자과정 1천7백명 여성경영자 3백50명을
배출, 사회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죠"

-만약 지금 창업을 하게 된다면 어떤 업종을 하시겠습니까.

"창업은 자기가 경험해본 분야에서 해야 합니다.

제가 한다면 교육사업을 할수 밖에 없겠죠.

중소기업 DB나 소프트웨어제작 등 할 일이 꽤 되리라고 봅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