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이 화의고수나 법정관리선택을 10월6일까지 기아가 알아서 하라고
결정한 후인 26일 밤9시 김선홍회장은 주요사장단회의를 소집했다.

토요일오전에 열리는 사장단회의를 앞당긴 것이다.

채권단회의결과보고가 끝난뒤 김회장이 말문을 열었다.

"밤늦게까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밖에서는 우리 모습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최근 기아자동차의 재무상태를 점검한 회계관련 회사사람을
만났더니 재무구조가 비교적 건실한 기아자동차가 어쩌다가 이런 꼴이
됐느냐고 묻더라. 계열사에 대한 지급보증 때문에 기아자동차가 어렵긴
하지만 외부에선 기아자동차사정을 잘 모르는것 같다. 기아자동차는 이제
소형승용차에서 대형승용차까지 소형상용차에서 대형상용차까지 그리고
특수차량까지 포함해 완전생산체제를 갖추었다. 투자도 모두 완료됐다.
해외공장도 11개다. 1백40여개 나라에 우리차를 팔고 있다. 인도네시아
러시아 중국 브라질 터키등에서도 올해 공장을 짓거나 생산을 시작한다.
그 나라의 책임자들이 관심을 갖고 추진하는 사업이다. 해외사업이 얼마나
중요한가. 밖에서는 이런 사정을 잘 모르는것 같다. 아무튼 자구노력에
매진해 달라"

기아처리가 숨가쁘게 돌아가는 것치곤 회의분위기가 예전과 크게 달라진게
없었다.

현재 추진하는 자구노력에 박차를 가하자는 다짐뿐이었다.

여러사장들이 모인 자리여서 김회장이 채권단결정에 대한 속마음을 털어
놓기 어려운 형편인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자구노력만을 얘기하는 것은 기아로선 화의고수라는 외길밖에
없기 때문이다.

법정관리는 곧 "기아경영진퇴진-제3자인수음모"에 백기를 드는 꼴이라고
기아는 보고 있다.

부도유예협약적용이후 2개월이 넘도록 채권단에 호소한 것도 법정관리방어
였는데 이제와서 손을 들수 없다는 입장이다.

엄성용 기아그룹기획조정실이사는 "변한게 없다. 그리고 변할 것도 없다"고
말했다.

부도유예협약이 만료되는 29일 열릴 대표자회의에 박제혁 기아자동차사장이
참석할 예정이나 박사장 역시 할말이 없을 것이라고 기아측은 밝혔다.

박사장주재로 28일 오전에 열린 자동차 생산판매대책회의에서도 "차를 많이
팔아 자금을 마련해 버티는 길밖에 없다"는 분위기였다.

사면초가격으로 압박을 당하고 있는 기아로선 일단 최대한 시간을 벌어
보자는 전략같다.

법원이 27일 기아자동차에 대해 재산보전처분명령을 내려 부도를 피하게
된 만큼 3~6개월이 걸릴 화의개시까지 어떻게든 견뎌 본다는 것이다.

그 사이에 기아는 자금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은행의 자금지원없이 기아자동차가 차판매대금만으로 살아가긴 어렵다.

1만7천여개 협력업체들도 화의나 법정관리에 들어갈지 않을 경우 줄줄이
부도날 가능성이 높다.

주가폭락과 금리급등은 이어질게 뻔하다.

기아만이 아니고 정부와 채권단도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화의를 고수하는 기아로선 이같은 상황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다.

"그래도 어떻게 하느냐. 재력을 갖춘 대기업에 기아를 송두리째 넘겨줄수는
없다. 우리 스스로 살아나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노력해야 하지 않겠느냐"

기아측의 이같은 결연한 의지는 전혀 변할것 같지 않은 분위기다.

채권단이 기아에 법정관리나 화의 둘중 하나를 결정하라고 제시한 10월6일
까지 1주일 남았다.

그 사이에 기아는 최종입장을 정해야 한다.

그러나 기아측은 그렇게 짧은 기간에 기아처리가 결판날 것으로 보지
않는다.

화의고수라는 기아측 입장이 흔들림없는 만큼 짧게는 3~4개월, 멀게는
내년이후 까지 채권단이나 정부와 벌일 힘겨운 싸움에 대비하는 듯하다.

기아는 장기전에 들어갔다.

<고광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