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남정 < 한일산업협력재단이사 >

현재의 우리산업은 일본경제에 크게 의존적인 구조로 되어 있다.

30여년의 짧은 기간에 우리가 고도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지리적
으로 가까운 일본으로부터 도입한 자본과 기술을 슬기롭게 활용하여 발빠른
공업화에 성공하였으며, 강력한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통해 고도성장에 필요한
외화를 획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도 우리의 대일교역현황을 보면 1백57억달러를 수출하고 3백14억달러를
수입함으로써 무역수지는 사상 최대규모인 1백57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것은 우리나라 전체 무역적자의 4분의3에 해당한다.

수입내용을 보면 95%가 우리산업이 꼭 필요로 하는 중화학제품, 즉 우리의
산업생산에 필요한 핵심부품이나 시설재들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우리의 대일수출도 그 동안 고부가가치 상품구조로 전환되어 과거의
농산품이나 경공업제품에서 지금(96년기준) 철강 반도체 전기전자제품 기계류
화학 공업제품 등의 중화학제품이 71%를 차지하고 있다.

경공업제품의 경우 대체로 중국 동남아 등 후발개도국에 대해 가격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의 일본의존적인 산업구조에 기인한 대일무역 역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일본과 이퀼 파트너로서 공존공영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 것일까.

이를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몇가지 점이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 일본을 있는 그대로 보고 우리와의 격차를 냉정하게 인정하자.

격차를 인정은 하되 우리와의 단순비교로 열등감에 빠질 필요는 없다.

우리와 일본과의 모든면에서의 격차는 우리의 국민성이 뒤떨어지거나
우리의 능력이 부족해 생긴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둘째 일본에 대해 당당해지고 자신감을 갖자.

세계에서 오직 한국사람만이 일본을 얕잡아 본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런
오기를 되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 한국인은 세계에서도 우수하고 저력있는 민족중 하나이다.

세계의 선진제국이 1백~1백50년 걸려 이룩한 경제성장을 우리는 단 35년
이라는 짧은 기간에 이룩하지 않았던가.

62년 겨우 82달러에 불과했던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이 지금은 1만달러를
넘어섰다.

세계인들이 한강의 기적이라고 칭송하던 일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작년에 국민 총생산이 4천8백억달러로 세계 2백여국가 가운데
11위를 차지했고 교역규모는 12위, 그리고 선진국클럽인 OECD에 당당히
가입했다.

해방직후 우리의 위상이나 경제규모는 오늘날의 자이르나 소말리아 수준
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지금 일본경제계에서는 약관 39세의 재일교포 3세인 손정의라는 인물이
등장해 일본경제계를 뒤흔들어 놓고 있다.

독특하고 도전적이며 창의적인 경영스타일로 사업을 시작한지 불과 15년만
에 일본의 4위 부자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일본경제계에서는 1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혁신적인 경영자로 그를
극찬하고 있으며 미국의 빌 게이츠와 같은 반열에 그를 올려놓고 있다.

제2,제3의 손정의가 탄생할 것으로 기대하고 싶다.

셋째 리틀 재팬에서 벗어나자.

대기업들도 중소기업들도 일본에서 성공이 확인된 기술을 들여와 제품을
만들어 파는, 땅짚고 헤엄치기식 사업에 의존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는 영원히 일본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어려우며 일본경제에
예속만 심화시킬뿐이다.

일본이 할 수 없는 분야를 찾아내고 기술을 개발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만이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

우리 젊은이들의 창조적인 두뇌를 활용한 소프트웨어나 아이디어 상품의
개발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젊은이들이 적극 벤처기업을 설립하여 새롭고 창조적인 아이템이 개발될
수 있도록 이를 범국가적으로 지원하고 이들 벤처기업들의 저변이 확대되고
상호간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도록 판을 마련해 주어야 할 것이다.

국내의 어느 조그만 게임소프트웨어 업체가 개발하여 일본에 수출한 포캣
비스켓이라는 게임기는 판매가 시작되자 마자 동이 나 밤새 줄을 선 사람들
에게 구입권을 나누어주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1차 수출분 30만개가 순식간에 팔렸으며, 2차로 4백만개를 주문받았다.

일본에서의 개당 판매가격은 1만7천원수준이라고 한다.

대일수입을 유발하지 않는 이런 소프트웨어 분야에 대한 수요는 향후에도
무궁무진할 것이다.

21세기를 3년여 남겨두고 있다.

농업혁명 산업혁명을 거쳐 21세기에는 제3의 혁명인 디지털혁명을 통한
정보화사회가 도래한다고 예측되고 있다.

한국인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창조적인 일에 소질이 있는 민족인 반면
일본인은 창조보다는 본체에 아이디어를 첨가해 편리하게 만드는, 즉 제조업
에 천부적인 자질을 가진 민족이다.

창조성의 경쟁시대로 예상되는 21세기는 한국민들의 창조성을 바탕으로
크게 도약하는 세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소프트웨어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되는 한글을 만든 것이 우리 한국인이며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및 거북선 발명 등의 자랑스런 역사를 우리는 가지고
있다.

문민정부에서의 각종 대형참사가 우리에게 홍역의 역할을 해 21세기에
우리 대한민국이 건강하게 아시아.태평양지역 경제를 선도해나가는 참다운
선진국이 될 것으로 기대해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