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경제신문 - LA타임스 신디케이트 독점전재 ]

중국의 반체제 물리학자 팡리즈는 이번 중국 공산당 제15차 전국대표대회가
국민들의 높은 기대감과는 달리 향후 정치개혁 민주화 등에 어떠한 변화도
가져오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차오스 상무위원장의 실각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려
하지만 팡은 이 또한 변화에 대한 열망을 충족시켜주진 못할 것으로 점쳤다.

오히려 장쩌민 국가주석의 1인체제를 공고히 해주는 역효과만을 초래,
당분간 정치개혁 등 변화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감은 수면밑으로 가라앉을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팡은 특히 지금 중국 당국이 시도하고 있는 국영기업의 사유화계획은
경쟁력회복이라는 본래 취지를 달성하기보다는 오히려 부패한 공산당
지도부의 주머니만을 불려주는 절호의 기회로 작용할 것으로 분석했다.

천안문사태 이후 미국에 망명, 미 애리조나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팡이
15전대 이후 중국의 정치상황을 분석한 기고문을 정리해 싣는다.

<정리=김수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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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막을 내린 중국 공산당 제15차 전국대표대회(15전대)의 결과는
한마디로 실망 그 자체였다.

덩샤오핑사후 중국 국민들은 정치개혁 민주화 등 많은 변화를 기대해왔다.

그러나 이번 15전대는 이같은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15전대 이후에도 달라질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굳이 찾자면 차오스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의 실각을 들 수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장쩌민 국가주석이 차오스 상무위원장을 정계에서 축출한
것을 두고 정치개혁에 치명타를 날린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들은 차오를 당 지도부중 가장 "진보적" 인물로 평가해왔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당공식서열 3위였던 차오 상무위원장은 그동안 "당치"
보다는 "법치"를 강력히 주장해왔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분석과는 달리 차오의 실각도 정치적으로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

그의 정치적 "사망"은 분명 정치개혁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개혁을 주장해온 인사들이 차오의 실각을 절대 아쉬워
하지도 않는다.

대부분의 당내 정치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차오도 외부적으로 알려진
바와는 달리 법치보다는 당치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5월 차오가 한 외국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인터뷰에서 "당이 법위에 군림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법이
당에 우선해야 한다고 믿느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차오는 "마르크스-레닌
주의에 따르면 이 둘간엔 어느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원칙은 없다. 왜냐하면
둘중 어느 것도 헌법위에 군림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는 애매모호한 대답으로
얼버무렸다.

그러나 차오의 발언을 곰곰 뜯어보면 법치는 곧 당치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중국 헌법은 분명히 공산당이 중국사회를 이끌 수 있는 대표성을 갖춘
기구라고 못박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정치지도자들처럼 차오도 당과 법사이에 분명한 한계선을 긋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더욱이 차오는 후야오방 자오쯔양 등 당내 개혁파들이 보수파의 공격으로
궁지에 몰려있을 당시에도 이들의 편에 서서 옹호하기는 커녕 은근슬쩍 발을
빼버리는 기회주의자적 행동도 서슴지 않았었다.

이처럼 이번 15전대를 통해 분명해진 것은 중국 정치상황이 예전과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차오의 실각이 정치개혁을 비롯 어떠한 변화도 가져오지 못한 것처럼.

덩의 생존당시와 마찬가지로 중국 공산당은 정치적으로 여전히 1당체제를
고집하고 있다.

특히 최대 라이벌인 차오의 실각은 오히려 장쩌민 국가주석의 1인체제를
더욱 공고히 해주는 역효과를 초래했다.

따라서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적 열망은 당분간 수면밑으로 가라앉을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장주석은 또 이번 15전대에서 지금까지 당 안팎의 개혁주의자들이 주장해
온 지난 89년 천안문사태에 대한 재평가요구도 효과적으로 차단했다.

천안문사태에 대한 재평가는 그동안 정치개혁을 촉진시키는 돌파구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었다.

경제적으로도 사유화의 길을 걷고 있긴 하지만 법치에 대한 대원칙없이는
이 또한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15전대를 통해 새롭게 등장한 이른바 신세대 지도자들은 현재 중국이
직면하고 있는 사유화 등 갖가지 경제적 도전들을 슬기롭게 해결할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원칙없이 실시되는 사유화는 부패를 조장한다는 우려감만 증폭시키고 있다.

장주석은 비효율성과 만성적자로 중국경제의 최대 골칫거리인 국영기업의
사유화를 통해 경제회생을 도모하고 있긴 하지만 이는 본래의 목적달성보다
는 부패한 당지도부의 주머니를 불려주는 절호의 기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원칙없이 벌이는 사유화계획은 이미 심각한 상황에 이른 실업난을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중국의 실업자수는 2억명인 것으로 집계됐으며 그 숫자는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부패한 관료들의 착취에 견디다 못한 실업자와 농민들의 반발도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이전까지 평화적 시위로 뜻을 전달해오던 이들이 최근 들어서는 도로를
점거하거나 지방관청을 기습공격하는 등 과격한 시위양상을 보이고 있다.

외교면에서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국수주의에 흠뻑 젖어있어 작은 변화의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보면 현재 당지도부가 취하고 있는 길은 중국 국민
들이 덩의 사후 그토록 갈망했던 민주화나 법치주의로 나아가는 정도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현재 믿고 있는 유일한 것은 역사적으로 검증되지 않는 이론뿐이다.

한 나라의 경제가 어느정도 발전단계에 이르면 자연적으로 정치적 민주화도
함께 따라온다는 이론에 한가닥 희망을 걸고 있다.

물론 이 이론이 현실화된다면 더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지금까지 이 이론은 역사적으로 입증된 적이 없었다.

이는 독일과 일본의 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30년대 독일은 연평균 7%의 고도 경제성장을 누렸다.

당시 유럽국가중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이었다.

비슷한 시기 아시아에선 일본이 눈부신 경제성장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 두나라의 경제시스템은 지금 중국 행정부가 도입을 시도하고 있는
"자유시장경제"였다.

이 두나라의 경우 경제적으로는 어느정도 발전단계에 접어들었지만 앞서
이야기한 이론이 주장하듯 인권신장과 정치민주화는 자연 발생적으로 뒤따르
질 못했다.

오히려 경제발전과 함께 싹트기 시작한 국수주의는 이 두나라를 내부적으론
파시즘, 대외적으론 전쟁을 일삼는 "전범국"으로 키워냈던 것이다.

20세기초 독일과 일본이 그러했듯이 21세기를 앞둔 지금 중국이 이들 두
나라가 걸었던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경제개혁과 개방 그 자체만으로 한 나라의 정치민주화가 결코 실현될 수
없다는 사실이 입증된 마당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결론적으로 이번 15전대는 중국의 정치지도자들이 방향을 잘못 잡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킨 셈이다.

현재 중국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은 중국 국민은 물론이고 전세계민들에게
고통을 안겨다 줄 것이 확실하다.

[[ 약력 ]]

<>1936년 저장성 출생
<>베이징대 물리학부 졸업
<>84년 중국 과학기술대 부학장
<>87년 학생들의 민주화시위 지지로 당적 박탈
<>89년 천안문사태후 베이징주재 미국대사관에 피신
<>90년 미국 망명
<>현재 미 애리조나대 교수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