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어컷 방전가공기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신기해한다.

가늘고 약한 구리선 하나가 10mm를 넘는 두꺼운 고강도 강판을 쉽게
잘라내기 때문이다.

강판을 그냥 잘라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선과 곡선에 관계없이
0.1mm의 오차도 없이 정교하게 가공해낸다.

이런 특출한 정밀가공성 때문에 기계부품업체들은 누구나 와이어컷 방전
가공기를 도입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동안은 감히 이 가공기를 만들어내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컴퓨터제어기술등 최첨단기술이 요구돼서다.

인터테크노의 박광희(39)사장은 남들이 아직 감히 도전하지 못한
이 와이어컷 분야에 일찍부터 뛰어들었다.

박사장이 와이어컷 가공기를 처음 다뤄본것은 무려 20년전.

용산공고 3학년이던 그는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이 기계와 처음으로
부딪쳤다.

당시로선 일본에서 첫도입된 기계여서 이를 제대로 다루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 와이어컷에 매료된 그는 광운공대 3학년때 다시 이 가공기와 인연을
맺는다.

일본 와이어컷제조업체의 한국대리점에서 일하게 된 것.

대학을 졸업한 뒤인 86년엔 서울 왕십리 무학극장빌딩에 15평짜리
사무실을 얻어 "한국테크노"란 방전가공기 애프터서비스업체를 창업했다.

이 업체는 90년부터 제조부문에 참여, 와이어컷 구리선인 전극선을
만들어냈다.

전극선을 개발해내자 박사장은 대단한 결심을 한다.

모든 사업을 일단 중단하고 자신이 모아둔 돈과 국민은행으로부터 지원받은
기술개발무상자금등 전재산을 쓸어넣어 컴퓨터 수치제어(CNC)와이어컷
방전가공기를 만들어보기로 한 것.

91년말 그는 김포에 가건물을 하나 지어 기술자 2명과 함께 이곳에서
밤낮없이 방전가공기 개발에 매달렸다.

일단 거대한 철구조물을 잘라내 용접을 한 뒤 와이어 구동부를
조립해나갔다.

자동 프로그램을 내장할 무렵엔 이미 계절이 두번이나 바뀌고 있었다.

이 가공기 개발에 매달린지 9개월이 지난 92년 8월 30일, 드디어
와이어컷 방전가공기가 탄생했다.

무더운 여름날 처음으로 만든 방전가공기가 과연 작동이 될지 몹시
두려웠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첫개발품이 실패하는 것을 많이 봐온 터라 더욱 겁이
났다.

이날 저녁 세사람은 마음을 졸이며 가공기에 전선을 꽂았다.

떨그덕거릴것으로 생각했던 기계가 용케도 정상 가동되는게 아닌가.

세사람은 그 자리에서 만세를 불렀다.

대기업에서도 자체기술로 개발하기 힘들어하는 가공기를 영세기업에서
개발해낸 것이다.

같은해 10월10일 박사장은 김포공장에서 제품발표회를 열면서 "주식회사
인터테크노"란 이름으로 재창업을 했다.

제품발표회에 참가한 업계관계자들은 "진짜 자체 기술로 만든거냐"며
의아해했다.

개발된 가공기의 정밀도를 보곤 모두가 놀라워했다.

그럼에도 누구하나 선뜻 가공기제작을 주문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로부터 20여일이 지났을 때 한 중소기업자가 개발품으로 만들어놓은
가공기를 사가겠다고 했다.

뛸듯이 기뻤다.

그러나 이 첫개발품을 트럭에 실어보내는 날 박사장은 자꾸만 눈물이
났다.

그토록 밤낮없이 혼을 쏟아 만든 제품을 남의 집으로 보내려니 섭섭하기
그지없었다.

박사장은 "이때서야 딸을 키워 시집보내는 부모의 마음을 처음 알았다"고
토로한다.

요즘 인터테크노의 가공기는 성능 정밀도 컴퓨터설정등에서 업계 최고가
됐다.

이 회사가 이런 위치에 올라선 것은 바로 딸을 키워 시집보내는 마음으로
정성들여 제품을 만들기 때문인 것같다.

< 이치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