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무더운 더위 속에서 나는 전주 중앙지점장 발령을 받았다.

나의 고향이자 증권인으로서 첫발을 내디뎠던 전주를 떠나 노조위원장을
거쳐 유성지점장을 맡아 일하다가 5년만에 다시 고향 전주의 지점장으로
발령받은 것이다.

감회도 없지 않았지만 우선 새로 시작하는 소위 "신설점포"를 어떻게
짊어지고 나가야 할지 걱정부터 앞서기 시작했다.

시황도 좋지 않았고 지점이 들어서는 위치도 중심가와 떨어진 곳이었기에
나의 걱정은 막연한 책임감이 아니라 구체적인 부담감으로 나타났다.

지점 개점 10일전, 나는 가장 먼저 직원들과 믿음과 사랑을 굳건히
확인할 수 있는 행사를 하나 치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가화만사성이란 말이 있듯이 직원과 한가족이라는 의식만이 어려운
여건을 이겨나갈 수 있는 최고의 방도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궁리 저 궁리 하다가 생각한 것이 전직원 지리산 등정.

지점 개점 전날 우리는 지점 깃발을 앞세우고 1백리길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다.

처음엔 힘도 들었지만 한걸음 한걸음 오르면서 자신감과 의지가
불타올랐고 마치 이 고난의 역정을 이겨내야만 어떤 일이든 할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여직원들도 힘든 표정을 감추고 한명의 낙오자도 없이 서로 손을
잡아주고 이끌어주면서 끝까지 함께 하였다.

그런 직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이들과 함께 하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이윽고 정상.

우리는 천왕봉에서 감격어린 마음으로 서로를 격려했고 그 눈빛에서는
해냈다는 자신감과 믿음이 솟구쳤다.

이후 우리는 한달에 한번 정도 산행을 하고 있다.

개점후 1년넘게 지속되어온 산행으로 몸과 마음을 단련하였고 그러다보니
영업실적도 크게 향상돼가고 있어 나를 믿고 따라주는 직원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우리 지점엔 지금도 지점훈이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다.

"처음처럼 시작하자"는 그 문구는 우리의 다짐처럼, 천왕봉의 아침
햇살처럼 우리를 늘 깨어있게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