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체제 붕괴이후 정치 군사 외교뿐 아니라 경제면에서도 미국의 독주시대
가 지속되고 있음은 부인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국력을 바탕으로 한 세계경찰로서의 역할은 그렇다 치더라도 재정적자와
고실업의 2중적 수렁에서 좀체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유럽이나, 장기간의
경기침체에 시달리는 일본 등 지구촌의 여타 선진경제권과는 달리 장장
7년간의 기록적인 초호황을 지속하고 있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다.

그러나 한편 그러한 미국의 독주가 과연 세계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게 한다.

견제와 균형이 깨지면 독선으로 흐르고,독선을 바탕으로 하는 패권주의가
국제 경제질서를 교란하고 왜곡하는게 아닌지 염려하게 된다.

최근 미국이 보이고 있는 일련의 행태는 세계의 "지도적 국가" 수준을 넘어
그러한 패권주의로 흐르는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에 충분하다.

우리에게 가한 최근의 통상압력 조치만 보아도 그러한 위험을 쉽게 읽을수
있다.

이미 알려진대로 슈퍼 301조를 발동한 자동차시장 개방요구는 분명 그
사유가 국제관례에 어긋나는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에서 검출된 O-157 대장균과 관련해서 공동 재조사를 요구
하는 등의 주권침해성 요구를 해온 것도 미국이 아니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독선의 표출이다.

게다가 미국은 한국뿐 아니라 EU 일본 등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자기들의
경제질서를 따라 주도록 강요하는 조치를 잇달아 취하고 있다.

지난 연초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이 국가이기주의와 보호주의,
그리고 외국인 혐오주의에 빠지고 있음을 발견할수 있다"고 지적하고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 이처럼 지역주의나 보수주의에 빠지는 사실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언급한바 있다.

경쟁자가 없는 독주에 대한 의구심이자 부작용을 걱정한 것으로 이해한다.

얼마전 미국은 보잉사와 맥도널더글러스사의 합병을 두고 유럽연합과
대립한바 있는데, 이는 결국 미국이 시장독점에 엄격한 입장인듯 하면서도
실상 세계 항공산업을 독점하려는 기도로 이해된다.

이번 한국에 대한 슈퍼301조 발동도 자동차산업의 성장을 미리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상대의 희생위에 자국의 발전을 꾀하려 한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운 사례들
이다.

팍스 아메리카나로 불리는 미국 우위의 평화시대는 상당기간 지속되리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지금과 같은 극단적 이기주의가
강화될 경우 돌발적 사태변화나 세력판도의 변화도 걱정하지 않을수 없다.

그럴 경우 세계각국은 많은 비용과 혼란에 직면할 우려가 크며 궁극적으로
미국 자신을 위해서도 득이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는 견제와 균형이 사라진 요즈음의 세계경제 역학관계가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한 패권주의로 치닫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미국이 좀더 공존공영에
충실한 세계 지도국가로서의 책무와 역할에 대해 힘써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