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신] '10월의 독립운동가'에 규암 김약연 선생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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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는 북간도지역 민족지도자로 평생을 민족교육과 조국광복을
위해 헌신한 규암 김약연(1868~1942) 선생을 순국 55주기를 맞아 10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발표했다.
선생은 1868년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출생, 북간도로 건너가 1908년
용정에 "명동서숙"을 설립, 이듬해 이를 명동학교로 확대 개칭했으며
명동중학 설립, 여학교병설 운영 등 민족교육의 토대를 구축해 한인들의
항일사상을 고취하는데 앞장섰다.
선생은 1918년 만주 노령 미주 등지에서 활동중이던 이동휘, 안창호
선생 등 민족지도자 39명과 함께 대한독립선언서를 발표했으며, 3.1운동이
발발하자 북간도 용정에서 한인 1만여명을 동원, 만세 시위를 주도했다.
선생은 또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대한국민회를 만들어 산하에
홍범도.안무부대를 두고 항일무장투쟁을 수행했다.
선생은 북간도에서 한국독립운동의 수령으로 지목돼 일제의 추적을 받자
연길 현장이 일제의 체포를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감금해 3년간의 옥고를
치렀으며, 1942년 용정 자택에서 "내 행동이 곧 나의 유언"이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5일자).
위해 헌신한 규암 김약연(1868~1942) 선생을 순국 55주기를 맞아 10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발표했다.
선생은 1868년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출생, 북간도로 건너가 1908년
용정에 "명동서숙"을 설립, 이듬해 이를 명동학교로 확대 개칭했으며
명동중학 설립, 여학교병설 운영 등 민족교육의 토대를 구축해 한인들의
항일사상을 고취하는데 앞장섰다.
선생은 1918년 만주 노령 미주 등지에서 활동중이던 이동휘, 안창호
선생 등 민족지도자 39명과 함께 대한독립선언서를 발표했으며, 3.1운동이
발발하자 북간도 용정에서 한인 1만여명을 동원, 만세 시위를 주도했다.
선생은 또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대한국민회를 만들어 산하에
홍범도.안무부대를 두고 항일무장투쟁을 수행했다.
선생은 북간도에서 한국독립운동의 수령으로 지목돼 일제의 추적을 받자
연길 현장이 일제의 체포를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감금해 3년간의 옥고를
치렀으며, 1942년 용정 자택에서 "내 행동이 곧 나의 유언"이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5일자).